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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봉화골 칠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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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대식 2026년 09월 535호
글·사진 / 김대식

칠불암입니다. 불상들이 짙은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는, 햇볕 따가운 한낮입니다.
땀 흘리며 숨 가쁘게 골짜기 길을 올라 이 광경과 마주친 나그네는 말없이 풍경의 한 모퉁이로 물러납니다.
다섯 분의 부처와 두 분의 보살.
바위벽의 마애삼존과 그 앞 바위기둥 동, 서, 남, 북 네 면의 사방불이 이루는 풍경에는 감당 못할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나그네는 저도 모르게 마음을 여미고 부처님들을 바라봅니다.
나그네는 여지껏 부처님을 알지 못합니다.
여기 마애삼존이나 사방불 중에 그 어느 부처, 그 어느 보살의 존명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저, 부처님들로 해서 여기 골짜기에 위엄이 그득 채워지고 있음에 마음을 조아릴 뿐입니다.

나그네에게는 칠불암이 초행이 아닙니다.
전에도 몇 번 찾아와서 마애삼존을, 기둥바위의 네 분 부처를 가까이 다가가서 뵙기도 했습니다.
마애삼존의 본존 표정이 다소 근엄하기는 했지만 두 분 보살의 표정에서는 잔잔한 웃음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기둥바위의 부처님들도 마찬가지여서 나그네는 별다른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그러나 다릅니다.
나그네는 살그머니 마음의 고개를 들고, 이 새삼스러운 위엄의 근원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려 봅니다.
어쩌면 부처님을 비추는 저 강렬한 햇빛이 그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햇빛은 여기 부처님들이 본시 지니고 있던 모습들을 드러내어 나그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나그네 마음속에 부처님을 오늘처럼 볼 수 있는 눈이 숨어 있음을 가르쳐 주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음을 씻으면 거룩함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다고…….

봉화골 깊은 골짜기가 거룩한 불국佛國임을 문득 알게 된 나그네에게, 부처님의 존명을 따지는 일은 이제 부질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