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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갤러리

남도의 땅 끝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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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이섭 2026년 09월 535호
연동마을의 녹우당을 지나며 윤선도와 윤두서를 잠시 떠올려본다.
공재의 자화상은 우리 나라 회화사상 가장 뛰어난 초상화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공재 윤두서는 윤선도의 증손이며 정약용의 외증조부이다.
골수 남인인 해남 윤씨집안의 종손으로 녹우당에서 삶을 마감한 그의 흔적은 응시하는 자화상을 통해 비장함으로 남아 있다.
남인의 비장함은 뒤꼭지에 붙어 대흥사까지 따라 붙는다.

두륜산 품에 안겨 있는 절은 언제 찾아도 푸근함으로 가득하다.
북원의 대웅보전으로 가려면 남원의 천불전을 지나야 한다.
요즘 같은 계절엔 천불전에 해가 머물다 가는 시간은 두어 시간이 전부이다.
그때에 만나는 천불전의 소박한 문살을 보게 된다면 쉬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대웅보전을 들러 청운각 마당에 앉는다. 세 그루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가을의 황금빛을 떨군 채 겨울을 나고 있다.
여름의 풍요로운 초록 또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드니 기억을 더듬기에 좋은 시간이다.

절 주위로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로 가득하다.
숲이 뿜어내는 숨을 마시며 걷는 ‘새벽숲길’은 한없는 평안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비 갠 후 쏟아지는 햇살은 대 잎에 떨어지고 축축한 기운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러고 나면 이윽고 나타나는 반지르르한 윤기. 바람에 흔들리는 윤기는 한참을 멈추어 서 있게 만든다.
새벽 공기의 차가움과 신선함 그리고 조용함은 하루 한 번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행복이다.

윤두서 또한 이곳 해남의 바람과 햇살을 즐겼을 터인데, 그러고 보면 지금의 행복은 꽤나 오래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