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길을 올라 암자로 향하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축축한 산 기운이 가득한 길엔 지난해에 떨어진 소나무 잎들, 바늘 같은 소나무 잎들은 황토색보다 짙게 쌓여 있다.
봄비가 내리는 산길은 새소리도 나지 않는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따금씩 들리는 산새소리가 사라진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화엄사 각황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높지 않은 산허리까지 구름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구름 같은 안개가 골에서 피어오르면
바람은 안개를 밀어올려 온 산으로 퍼뜨린다. 안개 속으로 화엄사 사 사자삼층석탑이 희미하다.
석탑의 향기는 골을 넘어 맞은편 산중턱에 서 있는 내게까지 전해진다. 아련하고 축축한 공기층을 건너오는 향기는 짙다.
그렇게 서 있던 그 자리를 뒤로 한 채 올라온 만큼을 내려와 화엄사로 들어섰다.
각황전 앞 석등의 규모에 놀라고, 균형미에 다시 놀라며, 좌측으로 난 오르막 계단으로 향했다.
탑 중심엔 보살상이 있고 마주하고 있는 또다른 탑 안에는 찻잔을 든 스님상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서역에서 제비를 타고 온 한 스님이 이곳에 화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가 연기 조사이며, 사 사자삼층석탑 안의 석상은 연기 조사의 어머니이고
무릎을 꿇고 차를 올리는 형태의 석상이 바로 효심이 깊었던 연기 조사라는 것이다.
탑은 각황전 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절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절을 나와 오른쪽으로 개울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시원한 물소리와 커다랗고 잘 생긴 돌들이 계곡을 채우고 있다.
나무는 봄기운을 다투어 받아들이고 있었다. 연초록 새순이 풀려나와 잎이 되고
산길은 오를수록 좁아져서 이내 촘촘한 대나무 길로 이어진다. 가느다란 대나무들은 키를 훌쩍 넘기며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구층암 승방의 모과나무 기둥은 살아서의 형태를 온전히 갖춘 채 대방채의 기둥이 되었다.
천불전 계단 앞의 모과나무가 살아 있는 기쁨이라면, 미라처럼 남아 있는 기둥은 죽지 않는 시간처럼 서 있다.
봄 안개와 빛으로 가득한 화엄사를 나오면서는 시작되는 여름을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