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영지갤러리

진도 쌍계사

다음 게시물 이전 게시물
영지 影池 - 이일섭 2026년 09월 535호
진도에서 가장 높은 ‘첨찰산 485미터’ 아래 쌍계사가 있다.
일주문에서 해탈문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은 매우 짧다. 50미터 정도의 거리라 해탈문이 보일 만하면 끝나 버린다.
내소사 전나무길이 600미터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거리다. 하지만, 이 길엔 아름다운 소리가 함께 살고 있다.
천천히 걸으며 끊이지 않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이다. 은행나무 밑에 앉아 잔잔한 바람과 함께 휘파람 같은 새소리를 듣는다.
한 녀석이 울음을 그치는가 싶더니 다른 녀석이 화답을 한다. 이 소리를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난감하다.
새소리를 들으며 빠져나온 해탈문 정면으로 100년 이상 되었다는 크고 잘 생긴 향나무가 있다.
나무 가까이 지나면 향이 나고, 가지를 건드리면 은은한 향내가 쏟아진다.
예부터 목재로 ‘향’을 피우거나 가구로 만들어 그 향을 즐겼던 터라 우리와는 친숙한 나무이기도 하다. 정면으로 우화루가 보인다.
우화루雨花褸! 멋진 이름이다. 주된 생활권이 몇 단지, 몇 동, 몇 호 주변이다 보니,
절에서 보는 전각의 이름들이 멋스럽게 들어온다.
두툼한 기둥들이 우화루를 받치고 있다. 기둥에 등을 대고 주춧돌에 앉는다.
조금씩 땀이 나던 차에 초석礎石을 깔고 앉으니 엉덩이가 시원하다. 기둥사이에 다실이 있다. 나지막하게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시원한 그늘을 나오기 전에 나무를 껴안아 보았다. 꽉! 깍지를 껴보려 해보지만 헛수고. 두 아름이 훨씬 넘는 기둥이 잡힐 리 없다.
가슴이 나무에 붙고, 반소매로 드러난 팔뚝이 감싸지는 느낌. 왜 이리 만족스러운 기분이 드는지 모를 일이다.
체온이 없는 차가운 나무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마치 살아 있는 나무에 안긴 것처럼.
누각 위에 오르니 널찍한 바닥이 시원하다. 여기에 누워서 오침을 하면 잠이 ‘솔솔’ 들 것이다.
두꺼운 나무가 깔린 바닥을 걸으니 터덕 트득! 못을 쓰지 않아서 조금씩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전각이나 오래 된 한옥 안에선 아무리 조심스럽게 걸으려 해도 나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마루가 깔린 창 밖에 단풍나무와 대나무가 있다. 마음에 드는 앵글을 찾아 천천히 발을 옮긴다. 철컥! 셔터를 누른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이들의 대화’처럼 대상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