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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들어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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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이일섭 2026년 09월 535호
해인사를 향해 문을 나선다.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어설픈 미래도시를 빠져나오는 기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새벽의 굉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해인사’라는 고목의 굵게 뻗은 가지를 타고 달려, 몸통 깊숙이 이어지는 길.
작은 가지인 신작로를 따라 도착한 절. 누구나 한번은 멈추는 곳, 일주문에서 곧게 뻗은 길 위의 봉황문을 본다.
양쪽으로 늘어선 자작나무와 전나무 무리가 하늘을 향해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길.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곧은 길을 따라 해탈문과 구광루를 지나 단숨에 대적광전 앞에 선다.
새해를 맞이해 처음 나선 길 끝이 법보종찰 해인총림이다.
고목의 잔가지에서 시작된 여정이 몸통의 안까지 뻗은 길로 이어진 셈이다.

‘우~웅~응’ 범종이 울어 새벽의 길을 열기 시작한다. 소나기를 퍼붓듯 법고를 때리는 스님의 팔뚝.
스님들이 이어가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마치 쉴 새 없이 뛰어가는 발걸음 같다. 그 발소리를 듣고 있으면
숨이 가쁠 정도로 빠르게 느껴진다. 어쩌면 법고가 지니고 있는 소리를 꺼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적광전의 새벽 예불소리는 군마들의 말발굽소리나, 찬 바닥을 구르는 돌의 소리처럼 웅장하다.
수행자의 어깨가 올라가고 숨을 들이마시면, 호흡이 빠져나가듯 염불이 이어진다. ‘옴마니반메홈’

길을 나서고 문을 들어서듯 새로운 해를 시작하며, 얼마 전 뒤돌아보았던 지난해의 기억을 꺼내어봅니다.
가야 할 길이 멀고 걸어왔던 길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지면 계속해서 길을 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돌아가기엔 멀고, 관성처럼 걷기에도 썩 내키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되뇌이며 한 해를 보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수행자의 뒷모습처럼, 새로운 시간이 다시 출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