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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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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이겸 2026년 09월 535호
그대가 고요한 곳만 찾아 공부를 한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눈을 떠서 경계를 보는 곳에 마음이 편안한지 궁금합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고요한 곳을 찾아 공부했던 것이 아직 힘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공부하되 아직 힘을 얻지 못했다면, 마땅히 힘을 얻는 지름길을 찾아야 비로소 평소의 많은 공부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평소 고요한 곳만 찾아 공부하는 것은 다만 시끄러움을 버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시끄러울 때 시끄러움이 자기마음을 어지럽힌다면 평소 고요한 곳을 찾아 공부하지 않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혜 스님의 편지-

해가 저물어 어두운 시간, 청량동 매표소를 지나 홍류동 남쪽 ‘청량사’로 가는 길. 합천에 들어오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내 죽창처럼 내려꽂는 장맛비로 바뀌었다. 번개와 천둥이 번갈아 내리치는 밤의 산길. 성난 하늘의 위세에 눌려 모든 것들이 숨죽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번개가 칠 때마다 드러나는 하얀 꽃잎들이 객을 안심시킨다. 아침이면 모든 꽃잎들이 세찬 빗줄기에 떨어지고 말테지.
가파른 길을 올라, 절 마당에 들어서니 마음이 놓인다. 대웅전에 들어 예를 올리고 나오는 길, 요사채 마루에 앉는다. 매번 들어도 비 오는 날 마루에서 앉아 듣는 낙수 소리가 왜 이리 편안한지…… 마당에서 ‘폴작!’대는 개구리가 작은 이벤트를 만들 뿐 절집엔 미동도 없다. 새벽예불 시간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매화산 월류봉 아래 자리한 청량사에는 어깨가 넓고 당당한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 그리고 하대석에 새겨진 사자가 인상적인 석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삼국사기 ‘열전’에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경주 남산, 지리산 쌍계사와 더불어 즐겨 놀았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어 신라 말기 이전부터 있었던 고찰로 생각된다.
절집은 온 천지가 꽃나무로 가득하다. 올해는 만개 시기가 늦어져서, 예년 같으면 봄꽃이 모두 지고 연초록 잎들만 있을 시기임에도 늦은 꽃구경을 하게 되었다. 매화는 져서 붉은 꽃받침만 남았고, 목련과 벚꽃은 한창이다. 그리고 연초록 잎과 함께 피어난 자두꽃 향기도 은은하다.
향기를 가로질러 대웅전 석가여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동안 몸과 마음으로 지었던 악업을 고한다. 계속해서 드러나는 악업들을 덜어보려 할수록 참회의 시간은 길어만 간다. ‘조건 없는 참회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며, 악업을 구체적으로 열거해 갔다. 이러한 시간은 지금 얼마나 행복하며, 감사해야 할 것들 또한 얼마나 많은지를 조금씩 알게 한다. 참회 이후에 일어난 변화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들고, 새로운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게 됐으며, 식구와 친우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했다. 그동안 지은 악업이 기도를 통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악업을 짓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게 할 것이다.
일범 스님과 차를 마시고 난 후, 스님에게서 전해 받은 책을 편다. 이 고귀한 글들은 어떤 인연을 짓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