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에 이르기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떤 법이 나지 아니하며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해인사의 산내암자들은 대부분 큰절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관계로 어느 방향으로 길을 가더라도 한 두 곳은 반드시 들르게 되기 마련이다. 홍제암 또한 큰절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다. 광해군으로부터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라는 시호를 받기도 한 사명대사가 입적한 절집이 이곳이고, 암자의 명칭 또한 이것에서 유래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이천여 명의 승병을 일으켜 크게 전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홍제암 한편에 남아 있는 비에는 허균이 쓴 비문이 새겨져 있고, 종처럼 모양을 낸 소박한 부도가 대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담장 밖에서 보이는 암자엔 붉은 색 꽃잎이 나풀거린다.
모란이 가득한 절집 마당. 벨벳 같은 표피가 햇살에 반짝인다. 꽃은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재주와 숙명을 타고 나기 마련인데 비해, 이 여인에게는 향기가 없다. 향기 없는 꽃으로 가득한 절집 마당. 붉은 색을 지나 검정색에 가깝게까지 진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향기 없이 태어난 숙명을 극복하려는 갈망일지도 모른다. 다른 꽃들이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붉은 기운으로 눈길을 잡아두려는 안쓰러움이다. 겹겹의 자주색 치마를 햇살에 부서뜨리며 모란이 바람에 흩날린다.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꽃봉오리는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떨어뜨렸다. 한편에선 꽁꽁 동여맨 어린 꽃잎이 터지려 하고 있다.
‘너무 애쓰지 마라! 향기 없는 너의 숙명을 알아차리는 날을 빨리 보려 애쓰지 마라!’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이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어느 해 이맘때쯤에도 담장 사이로 고개를 내민 수줍은 모란을 만났었다. 그것이 향기 없는 숙명과의 인연의 시작이었고, 해를 거듭해가며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목단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처럼 모란을 만나면 반갑고도 안쓰럽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향기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향기가 필요 없을 만큼 빛깔이 탐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를 거듭해가며 태어나는 것일 게다. 향기 없어 보이는 숙명이 해를 거듭하며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고 있는데, 나는 어떤 향기를 품고 있을까? 거듭되는 생명을 몇 번이나 타고난 것인가? 이번이 처음인가? 마지막은 아닐 게다. 그럴만한 시간을 쌓지 못하고 있으니…… 다음날 아침 눈을 뜨는 것을 예상 할 수 없듯이, 다음 생의 눈을 뜰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올해 피어난 꽃들이 다음해에도 그 자리에서 피어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더 이상의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향기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심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살아지고 있는 나의 숙명아!
너무 애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