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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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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이겸 2026년 09월 535호
허공 같으신 부처님께
한결같은 마음으로 통절히 머리 조아립니다.
오직 부처님께서는 가피를 내리시어 저의 미혹을 열어주소서.
제가 지금 발심하여 결정코 삼매를 닦고자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앞에서
손가락 마디마디를 태우며 큰 서원을 발하옵나니
세간의 모든 번뇌 다 벗어나고
오직 결정심만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원컨대 사생육도와 법계의 모든 유정들이
다겁생을 오가며 지은 온 죄업장 모두 소멸되기를
제가 다시 참회하며 머리 조아립니다.
바라노니 모든 죄와 업장 다 없어져
세세생생 보살도를 닦게 되어지이다.
마하반야바라밀

- 손가락을 태우면서 발원한 글(1954년, 일타 스님) -

해인사를 뒤로 하고 지족암으로 향한다. 다른 산내 암자와 마찬가지로 이곳 또한 큰절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희랑대를 지나자 급하게 꺾이는 길이 나온다. 길은 더욱 좁아졌지만, 잠시 후 길이 끝나고 만다. 앞을 막아서는 벼랑 위에 암자가 보인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봐야 할 정도로 가파른 곳에 들어섰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도솔암이었다고 한다. 신라 말과 고려 초에 걸쳐 살았던 희랑 대사의 기도처였다. 터만 남아있던 것을 조선시대 철종 7년, 1856년 추담 대사가 창건하고, 고종 30년, 1893년 환운 스님이 중건하면서 지족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도솔을 의역하여 지족知足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에 만족한다.’ 지족암을 향해 길을 나설 때 귀에 담아둔 말이었다. 이 말처럼 암자의 규모는 작았다. 그래서 그런지 첫 인상 또한 편안하다. 본디 암자의 미덕 중 하나는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은 데 있는 것. 규모를 거론하기 어색할 만큼 소박한 곳. 마당엔 두 채의 정자가 있다. 마루에 앉으니 밖에서 정자의 풍치를 느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가파른 암자의 아슬아슬함은 어디로 갔는지 후끈한 차향이 코를 타고 입천장에 들어온다. 정자에 앉으니 정면으로 가야산 줄기를 따라 펼쳐진 매화산이 보인다. 정자 끝, 담장의 고목은 죽은 지가 오래 되었지만 쉼터를 찾는 새들이 끊임없이 날아든다. 죽어서도 쓸모를 다하고 있다.
큰절이 우리의 몸이라면, 보이지 않는 곳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암자는 허파와 같은 곳이다. 밖에서 들어오는 탁한 공기를 마시고, 깨끗한 공기를 내쉬는 곳이 허파다. 심장과 함께 한시도 쉬지 않는 기관이다. 절집에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을 찾는 이유는 잠시라도 맑은 마음을 얻어가기 위함이다.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 가듯, 조용하고 소박하게 물을 긷고 싶은 것이다. 생활을 하다보면 애를 쓴다 하더러도, 오염된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많다. 이럴 때 절집이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동시에 크지 않고, 소박한 공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족이라는 글자를 다시 떠올렸다. ‘지知, 확실한 마음이 화살처럼 나온 것. 족足, 만족한다’가 된다. 이것은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알고, 그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일 게다. 혹은 ‘발길이 머물 곳을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말은 수행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지족암의 법당과 요사채는 모두 벼랑에 달려 있는 형국이다. 편안하게 들어선 전각이 아니며, 일반인들이 집을 지을 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암자는 누구나 쉽게 찾아올 만한 곳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보다. 선방 마당엔 들꽃이 가득 피었다. 머리를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행자 두 분이 꽃밭을 지난다. 한철, 찬란함을 위해 어둠 속에 들어 있었을 꽃을 본다. 검정 고무신과 묵언默言이라고 적힌 행자복을 입고, 이내 시들고 말 그 꽃 곁에 앉아 있다. ‘저이는 말을 하지 못하는 기간을 거치며, 행자기간을 나겠지……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는데 대략 6년이 걸릴 테지…….’ 그 기간이 끝나는 동시에 본격적인 수행자의 생활을 시작하리라는 생각이 스친다. 혼자 건너가야 하는 바다가 펼쳐지겠지만, 도반과 함께 파도를 넘게 해달라는 주제넘은 기원을 해본다. 나의 길, 모두의 길을 가는 이의 마음이 어떠랴!

맑은 곳에서 시작했으니, 맑은 곳에 도착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