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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갤러리

금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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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이겸 2026년 09월 535호
마음으로 부처님의 법을 환히 깨닫고,
마음을 관찰하여 스스로 귀의하면,
그 깨끗함은 물보다 맑다.
-《법구경 중에서》-


계곡을 끼고 홍류동의 물소리와 소나무들의 육중함을 느끼며 걷는다. 가을빛이 완연하다. 아스팔트엔 이 길보다 검은 소나무 그림자들이 늘어섰다. 구불거리는 길을 걸으며 숲과 개울에서 흘러나온 향기를 맡는다. 푸름을 간직한 홍솔들이 상수리나무, 오동나무, 단풍나무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단풍들 사이에 박혀 있는 사철나무의 위용은 마치 계절의 변화를 무심하게 대하는 듯 하다. 걸음은 어느새 부도 전에 닿았고,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을 비껴 계곡 쪽으로 향한다. 금선암이라고 적힌 입석이 가리킨 곳은 단풍나무가 늘어선 내리막. 삼십여 미터를 내려갔을까? 길 양쪽으로 펼쳐진 텃밭, 그리고 배추밭 너머로 보이는 법당의 모습이 들어온다. 한여름의 수고스러움으로 자라난 푸성귀들이 가을의 풍성함을 확인시킨다. 비탈에 지어진 전각은 녹색 배추밭과 지붕이 맞닿을 듯 나란하다. 맨 위엔 법당이 있고, 계곡 아래쪽으로 전각들이 들어섰다. 암자는 계곡과 맞닿아 있어서 홍류동의 가을 물빛과 소리가 마당으로 넘나든다.
물소리를 들으며 앉은 너럭바위 주위엔 단풍들로 가득하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것같이 쏟아져 내리는 가을 빛. 숲을 헤치고 들어온 빛이 나뭇잎에 닿아 투명한 속살이 드러난다. 햇살을 받아 투명해진 단풍을 보며 새순을 밀어올렸던 시절의 잎을 떠올린다. 꼭꼭 접혔던 잎들이 풀어지며 만들어 내었던 연초록의 풍경들, 가느다란 바람에도 흔들리던 얇고 투명한 잎들. 이른 봄의 여린 살결이 여름을 지나, 이제는 겨울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어떤 것이나 어린 시간에는 부드럽고 투명한 살결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성숙한 시기에 도달하게 되면 마치 개울에 비친 단풍잎의 모습처럼,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화려한 색을 지니게 되었지만 계절의 끝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봄과 여름을 만끽하며 구애의 손길을 보냈던 시간들이 잠들 준비를 하고 있다. 단풍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성장을 멈추는 것이 아니니, 이치를 따지자면 인간의 삶과 같다. 자연계에서 의지에 의해 스스로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인간은 삶을 멈추어야 할 시기가 되면 그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준비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감싼다. 서로에게 용서를 구한 후, 겨울 속으로 잠드는 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가는 단풍처럼, 새로운 단계에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오늘이 내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때에는 단풍의 빛깔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지 못했었다. 가을을 보내며 아쉬워하지 않았던 것은 󰡐다음 가을󰡑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그것은 중생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아마도 봄이나 여름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욕심과 두려움이 없으며, 고요하고 편안하여 근심이 없다. 욕망을 없애고 번뇌가 사라지니 그는 생사의 연못에서 벗어난 사람이다󰡑라는 경구처럼,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고 단풍처럼 곱게 흙이 되어 가는 이들의 소식들이 들리면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를 위한 합장!

홍류동 계곡의 단풍을 보고 있으니, 곁에 머물고 있는 인연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더욱 가깝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시간이 있다. 지금이 그때라고 느낀다면 빛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