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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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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이겸 2026년 09월 535호
약수암은 해인사의 부속 암자로 1904년 성주 스님이 창건하였다. 당시부터 절터에는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는데, 현재 법당 오른쪽에 있는 샘이 그것이다. 약수암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벽에 시래기가 걸려 있는 대문채를 들어서니 정면엔 법당이 있고, 오른쪽의 수각과 선원이 눈에 들어온다. 아담하게 지어놓은 수각 안엔 큰 돌그릇이 연이어 있다. 물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니 다른 샘물들과는 다른 조금은 구수한 맛이 감돈다. 추운 날씨인데 비해 샘물에선 온기가 느껴진다. 약수암 물은 다른 샘물들처럼 몸안으로 흘러 들어가며 느껴지는 오싹한 찬기운을 주지 않는다. 별다른 자극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다.
법당에 들어 절을 올린다. 지장보살, 석가모니부처님, 관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는 실내는 아담하고 따듯한 느낌을 준다. 벽에 붙은 ‘백운, 청산, 삼함’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삼함’이라고 씌여진 벽에는 벽장이 마련되어 있고, 이곳엔 가지런하게 정돈된 발우들이 여러 층으로 쌓여 있다. 조그만 1인 식탁 역할을 하는 ‘발단’위로 하나로 포개어진 네 개의 ‘발우’가 얹어지고, 다시 그 위에 ‘수저 집’을 올리고, 이 모든 것을 ‘발랑’으로 짜매어 놓았다. 매듭의 모양이 나비의 날개처럼 앉아 있다. 그리고 이 위에 다시 흰색 ‘발건’을 지붕 모양으로 덮어 놓았다. 벽장 안에 놓여진 발우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각각 한 채 한 채의 집들이 모여 있는 느낌을 준다.
흰색 지붕의 검붉은 집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법당 오른 쪽엔 부엌이 있고, 지금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난방을 한다. 아궁이의 불 냄새가 좋다. 잠시 동안이지만 선원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툭툭! 튀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모양을 지켜본다. ‘공양간을 잘 살면 복이 늘고, 채공간을 잘 살면 지혜가 는다.’는 말이 있다. 밥을 책임지고 있는 이가 밥을 잘 지어 내어놓으면 그것을 공양한 사람은 고마움을 느끼게 되니 복을 쌓는 것이다. 그리고 채공간에서 반찬을 만드는 이는 재료와 조리방법, 저장 요령과 남기지 않는 반찬의 양을 맞추기 위해 생각을 쓰다 보면 지혜가 는다고 한다. 한 끼를 준비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죽림선원은 1970년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개원하였고, 결제기간 중엔 40여 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수행하는 곳. 선원 역시 좌복과 가사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다. 깨달음을 향해 바다를 건너는 스님들. 취재를 위해 방문하여 짧게 머무르는 동안 여러 스님들과 마주쳤지만 바깥 세상에서 사용하는 향수의 흔적을 맡을 수 없었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향기조차도 없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건강하고 편안한 미소를 보았을 뿐이다.
우리의 감각 중 기억에 의존하는 것의 으뜸은 향기이다. 냄새야말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추억과도 같은 것이다. 연꽃에 향기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연꽃을 찾는다. 그러고 보면 코를 통해 들어오는 향기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을 전달 한다. 그 다음은 눈, 그리고 마음으로 향기를 느끼고 나면, 기억으로 향기를 간직한다. 계절이 바뀌면 꽃도 향기도 사라진다. 코를 통해 들어온 향은 없지만, 언제나 꺼내어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미소를 짓게 한다.
마당에 서니 어느새 석양이 붉은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빠르게 해가 지는 것을 보니, 추운 계절이 점점 깊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