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본다는 것은 홍류동 계곡엘 들어선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 맡았던 청록의 솔 냄새를 떠올리며 걷는 길이 한적하기만 하다. 신록의 반가움, 여름날의 부산한 성장, 가을의 화려한 자태도 모두 멈추었다. 그렇지만 겨울날의 한적함은 무엇도 따라올 수 없다. 연일 계속되는 추위가 찾는 이들의 숫자를 줄인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던 웃음소리와 빠른 걸음으로 길을 가득 메우던 등산객들도 보이지 않는다. 무리지어 다니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겨울잠이라도 자는 것일까? 덕분에 한적한 산길을 되찾은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오늘처럼 혹한의 날씨도 개의치 않고 절을 찾는 이들의 모습은 더욱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홍하문이라고 불리는 일주문 앞에 다다르니 당당한 위세가 여전하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김규진 선생의 글씨로 새겨진 “가야산 해인사”라는 현판을 다시 한 번 살피게 된다. 설령 어제 보았다 하더라도 새해가 되어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평소 지나쳤던 걸음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잠깐의 멈춤이 생각지도 않은 감응을 줄 때가 간혹 있다. 여러 차례 홍하문을 통해 절 마당으로 향했었지만, 지금처럼 한동안 멈추어 섰던 적은 드물었었다. 으레 통과하는 문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주문이 가진 본래의 뜻은 초발심의 상징이다. 중생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첫 관문인 것이다. 해인사를 처음 찾았던 때, 일주문을 지나며 합장하던 마음을 떠올렸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긴장감은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그 자리를 익숙함이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봉황문으로 향하는 걸음이 평소보다 느려졌다. 구광루를 지나 대적광전을 향해 멈춤 없이 진행되던 걸음이 어느새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흔히 “매일이 새로우니 해가 바뀌는 것은 달력 한 장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하루하루를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세상을 대할 때처럼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 일출을 본다고 하여, 부산을 떨며 바다와 산으로 몰려다닐 일은 아닌 듯 하다.
조심스런 마음으로 비로자나부처님을 친견하러 간다. 해인사 비로자나부처님은 최근 개금과정에서 국내 최고最古 불상으로 새롭게 확인된바 있다. 통일신라 목조 불상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국보급 문화재다. 개인적으로 꽤 의미가 있는 부처님이기도 하다. 일반에 공개되기 전 친견을 한 적이 있다. 개금불사를 하기전 기록을 위해 사진을 남기는 일을 했던 것인데,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옻칠을 한 불상은 온통 검은 빛이 었고, 신성한 기운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불상의 바닥을 들어 안에 새겨진 기록을 촬영하게 된 것 또한 참으로 복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후 이렇게 큰 인연을 짓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장경전을 둘러보고 난 후, 수미정상탑을 지난다. 이 작은 오솔길은 스님들의 포행 길로도 쓰이는데, 큰절과 가야산의 형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유로 가끔씩 걷곤 한다. 산줄기들과 법당의 지붕들이 교차하며 이루어내는 조화는 언제보아도 아름답다. 흐트러진 마음이 이처럼 조화롭게 정리될 수 있다면…. 이런 까닭으로 절을 찾게 된다. 그래서 새해에 찾는 해인사는 더욱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