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을 거쳐 암자로 오르는 길, 봄기운이 아직 이른지 들에 부는 바람에 찬 기운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빈논엔하나둘싹이돋아봄이멀지않았음을말해준다. 길은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바람은 더욱 세게 불어대고 그 덕에 새소리가 요란하다. 한웅큼의대밭을지나니또다른대숲이나타난다. 대숲으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대잎이 푸드득
거리며 날갯짓 시늉을 한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바람을 타기 시작하더니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나무들이 군무를 추는 장면은 언제 보아도 시원스럽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서 성전암을 만난다.
고개를 꺾어 위를 쳐다보니, 축대 위에 놓인 법당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법당 앞에 도착하니 자그만 마당이 딸려 있고, 한쪽 편에는 요사채가 들어서 있다. 밑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편안함을 준다. 법당을 포함한 모든 전각들 뒤로는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쳤다. 높은 벼랑에 집을 지은 새의 둥지와 같은 형국이다. 그리고 바위벽 뒤로 자그마한 길이 나 있는데, 나한전, 산신각으로 이어진다. 점심때를 놓치고 올라온 터라 시장기를 참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늦은 공양 차려내 온다. 객을 위해 차려진 소박한 밥상. 한두 가지의 찬이 오른 소반이 정갈하다. 공양 주보살이따로없는터라스님들이부엌일을한다.
성전암은 물이 귀한 곳이다. 법당 뒤 바위에서 조금씩 흘러내린 물을 모아서 밥을 짓는다. 물이 쌀보다 귀한 곳이다. 성전암은 어느 곳에서나 탁 트인 시야를 만나게 되나, 그 중 산신각에서 바라다보는 풍광이 일품이다. 첩첩이 쌓인 산들의 날등이 파도처럼 이어지며 보인다. 법당 안으로 객을 안내하던 스님이 문 앞에 서라고 한 후, 문을 열어젖힌다. 문 밖으로 펼쳐진 풍광으로 인해 마치 법당이 하늘에 떠 있는 것같이 느껴질 지경이다. 남서향 법당 안으로 오후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객을 안내한 스님은 저 멀리 산들이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산능선들에 붉은 기운이 번지기 시작하자 저녁예불을
알리는 범종이 울린다. 이 높은 곳에서 범종이 울면 어느 곳엔들 미치지 않을까 싶다. 예불이 끝날 무렵에는 노을이 더욱 번지고 여기에 밤의 푸른 기운이 내려 와 더욱 신비스런 분위기를 만든다.
성전암 대웅전에는 여래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여래상은 높이 60센티미터, 폭 43센티미터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불상의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머리에 상투 모양과 구슬이 표현되어 있고, 입은 꼭 다문 모습이다.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쳐져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아미타여래의 아홉 가지 손 모양 중 하품하생인을 연출하였다. 불상을 만들 때 남긴 기록과 경전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이 불상은 1644년, 인조 22년에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따라서 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 불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성전암은 879년, 신라 헌강왕 5년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우리나라를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하여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 이북인 서울 삼각산에 한 지맥 이 머물렀고, 진주 남강의 물을 끼고 있는‘여항산’에 와서 다른 한 지맥이 맺혔다고 보았다. 그래서 도선은 이곳에 성전암을 짓고‘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성전암聖殿庵’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절의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조仁祖’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하여 국난타개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전
한다. 이 절은 이것을 기리기 위해‘인조각仁祖閣’을 세웠으며, 현재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