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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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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이겸 2026년 09월 535호
송홧가루가 수없이 날려 안개를 이루지만, 대부분 뜻한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한여름이라고 하기엔 이른 계절이나 기온이 크게
올라위세를부리고있으니, 그도부정할일이아닌듯
하다. 연이어내린비로인해부쩍자라난풀들이먼지
날리던산과개울을뒤덮었다. 차창밖풍경은가던길
을멈추게하고, 게으른시간을갖는다. 봄비가내리고
난 후 안개로 가득한 날들을 가리켜‘하늘과 땅이 연
애를 한다’고 했던 어느 선생님의 말을 더듬는다. 꽃
이 피면 나비와 벌이 날아드니 대지는 생명의 기운으
로 가득해진다. 이도 잠시, 여느 풀들의 키가 자신을
앞지르기전에빠르게꽃을피워번식을해야한다. 꽃
이 사그라지고 나면 태양의 기운은 더욱 강해지기 시
작한다. 요즘 같은 때가 바로 그 시기인데, 간간이 피
어 있는 연보라색 오동나무 꽃을 보며 산청군‘화림
사’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임천강’을 따라 난 신작로
는 도회지의 길처럼 넓어서, 무지막지하다는 생각마
저 들게 한다. 이렇게까지 넓게 길을 냈어야 했을까?
길이넓어지면마음이가난한사람들도늘어난다.
치맛자락같이 펼쳐진 지리산 끄트머리에 화림사가
있다. 임천강이 돌아치는 금서면에서 강을 건넌다. 작
은 이정표가 선 길, 산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가면 절
집이나올터. 계곡을따라올라가는길은우거진숲이
다.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 길옆 계곡엔 태풍 매미 때
굴러 내려온 돌들이 가득하다. 때론 처음 가본 길이라
도 낯이 설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번 여정이 그렇
다. 깊이 들어만 가는 것 같더니, 어느새 당도한 절집
은 사방이 봉우리들로 둘러친 모습이나, 멀고 가까운
봉우리들로 인해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절집의 첫 인
상은 잡목이 우거진 숲길을 걷다가 앞이 탁! 트인 곳
을 만났을 때처럼 시원한 기분이다. 터만 닦아 놓았을
뿐, 여러 채의 전각들이 들어설 준비만 갖추고 있다.
푸른 산 빛에 기댄 극락보전의 현판만이 눈에 들어온
다. 그야말로 호젓한 절엔 오가는 이가 드물 듯싶다.
큰절과 몇몇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말사가 이 같은
분위기라놀랄것은아니지만, 왠지암자에와있는듯
하다. 노천에 모셔진 비로자나불 앞엔 야외 법당이 어
설프게 설치되어 있으나, 오래 쓰지 않을 요량으로 만
들어진것임을금세알수있을정도다. 예전에인법당
으로 쓰였던 허름한 전각엔 자그마한 부처님이 모셔
져 있다. 살림은 넉넉지 않으나 객을 맞
이하는 마음은 풍요로워서 웃는 얼굴로
차를 낸다. 송구스러울 정도로 다정하
여, 마주 앉은 스님께 오히려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찻잔과 찻잔 사이엔 따뜻
한 웃음이 놓이고, 해가 넘어가려 하는
데도 좀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가 쉽
지않다. 빈공간이많은절마당에서니,
바람이 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서늘한
바람이 계속해서 왔다갔다한다. 허허벌
판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다. 나이 든 보살 서넛이 마당을 지나 야
외법당으로향한다.
절집 둘레엔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꽃
씨를 날리고 있다. 단풍나무에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이 달리면 꽃은 비상을 준
비한다. 송홧가루 또한 바람을 타고 퍼
져나간다. 초록 안개처럼 흩어지는 송화
의 비행 목적지는 언제나 바람에 달려
있다. 산에는 절집이 있고, 절집엔 꽃씨
같은 이들이 산다. 홀로 꽃을 피워야 하
는 이들의 삶은 치열하다. 화단의 꽃은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산속에 피어난 꽃
은 번거로움을 피한다. 그 누구 하나 보
아주지 않아도 개념치 않는 꽃들이다.
애초에 타인을 위해서 뿌려진 씨앗이 아
니었기때문이다.
세상엔 홀로 피어 아름다운 꽃이 있
는가 하면, 무리를 지어 핀 꽃들이 있
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다 소중하기는
하나 대부분 송이로 살아남기 어려운
것들이 떼를 짓는다. 이 또한 살기 위한
방편이다. 하지만 무리를 짓는다 하더
라도 자신이 하나의 꽃임을 잊어서는
안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