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영지갤러리

영암사지 靈岩寺址

다음 게시물 이전 게시물
영지 影池 - 이겸 2026년 09월 535호
천년 동안 어둠을 물리친 석등이 황매산과 마주하고 있다. 선재동자구도의길영암사지 靈岩寺址이 겸천년 동안 어둠을 물리친 석등이 황매산과 마주하고 있다.‘영암사지靈岩寺址’는 합천 황매산에 안긴 폐사지이다. 4월 말에서 5월 초가 되면‘모산재에 피어난 철쭉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키를 훌쩍 넘긴 철쭉나무 숲엔 단풍 같은 꽃들이 달린다고하니, 얼마나장관일지궁금할따름이다.
‘영암사지’를 향하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산청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어서도 한참을 가야 한다. ‘폐사지’입구에 도착하니, 600살이 되었다는 느티나무가 버티고 섰다. 하지만 오래 산 것 같지않게 팔을 벌린 채, 건강하게 꼿꼿이 섰다.“ 네가 600년 된 일주문이로구나!”모퉁이를 돌아서니 최근에쌓은 듯 한 거대한 축대가 나타난다. 석축의 흰 속살은 오랜 세월을 보내야 느티나무의 풍모를 지닐 수 있을것같다.‘영암사지’는 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로처음 건립된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고려 현종 5년(1014)에적연선사가이곳에서83세에입적했다는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을 모셨던 금당·서금당·회랑터·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삼층석탑·귀부·당시의 건물 받침돌·각종 기와조각 등이 남아 있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둘째, 금당터 연석에 얼굴 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돋을새김한 점, 셋째,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계단이있는점이특이하다.이곳엔 중요한 불교 문화재들이 있는데,‘ 영암사지삼층석탑靈岩寺址三層石塔’과‘영암사지쌍사자석등靈岩寺址雙獅子石燈’그리고, ‘영암사지귀부靈岩寺址龜趺’가 그것이다. 석탑은 금당 앞에 새로 세운 두 채의 건물사이에 서 있다. 탑의 머리장식 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있다.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또한 간결하다. 석등은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1959년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화사석火舍石’은 팔각형인데,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사천왕상四天王像이조각되어있다.그리고 금당터를 지나 조금만 오르면귀부를 만날 수 있다. 이 귀부龜趺2기는
‘영암사터’내의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남아 있다. 귀부는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의 받침돌로,원래는 그 위로 비 몸돌과 비 머릿돌이얹혀 있었을 것이나, 양쪽 모두 지금은귀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특히 동쪽의 귀부에서는 정교하면서도 강한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거북의 등 무늬가 6각형이고, 비 몸돌을 괴는 네모난 비좌碑座주위에는 아름다운 구름무늬가 있다.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머리처럼 새겼고, 목은 똑바로 뻗어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서쪽귀부도 6각형의 등 무늬를 배열하였고,등가장자리에는연꽃잎을새겼다.어떤 곳이든‘폐사지’에 들어서면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특히 경주의‘원원사 터’와‘장항리 사 터’가 그러했다.
절집이 사라진 후에도 그‘터’에는 언제나 불법의 기운이 남아 있다. ‘영암사지’에는 600년이 된‘느티나무 일주문’이 무색하리만치 생생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귀부 앞 부러진 석등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과거 이곳에서 머리를 조아렸을 이들처럼, 후일 이곳에서
몸을낮출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