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간 해인사의 말사를 여러 곳 둘러보았다. 산중에있는 절집, 물가에 있는 절집, 모두 그 나름의 청정함을 지니고 있었다. 큰스님들이 주석하셨던 곳과 다녀가셨던 곳엘 들렀고, 가끔은 허름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고요한절집의풍모에놀라기도했었다.병술년丙戌年이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진주‘연화사’. 이곳은 진주 시내 한가운데 있어서 애써 길을 물어 찾지 않아도 되는 곳.‘ 남강南江’을건너시내의 중앙로를 달린다. 교통은 복잡하고 끼어들기를 하는 차들, 여기저기서 경적을 울려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바로 앞에는 재래시장이 있어
서 더욱 번잡스럽다. 그간 산중의 절을 찾아다녔던 내게 도심에 자리 잡은 사찰로 향하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환경을 낯설어 한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노릇이다. 산에서 살다가 내려온 처지도 아닌데 말이다. 시장통을 지나 끄트머리에 다다르니, ‘연화사’이정표가 자그마하게 붙어 있다. 그것도 스쳐 지나기에 알맞은 자리에말이다.
일주문도 사천왕도 없는 대문을 들어선다. 마당에들어서서 숨을 고르며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나는 그동안 산속 절집에 익숙해 있었던 탓에어느새 그와 같은 분위기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냄새 가득한 시장통이 일주문이고, 그곳에서 만났던이들이‘사천왕’이었을 터인데, 그것을 간과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절집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 절집은 맑고 깨끗한 산중에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청정한 도량이라 함은 그곳을 둘러싼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보三寶’가 살아 있고, 그 뜻을 따르는 이들이
모인 곳이 청정한 도량일 것이다. 그래서 절집은 혼잡한 세상에 더욱 필요하다. 부처가 필요 없는 세상, 모두가 부처인 세상에 더 이상의 도량은 필요 없을 것이다.‘ 참나’를 찾지 못한 이들이 많은 이유로 절집은 존재한다. 대중과 가까운 곳,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도량을 알아차리지 못한 어리석음을 참회해야만했다.
마당에 들어서면 연화사의 모든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은 진주 시내를 향해있으며, 서쪽 노을빛이 법당 안으로 들어올 만큼의 언덕에 앉아 있다. 법당 안에서 밖을 본다. 지금 바라보이는 풍경은 숱한 시간을 거치며 변해 온 것이며,후일 이곳에 오게 될 이 또한 지금의 나처럼 과거의 시간을 보지 못할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현재에 충실해야하고, 지금 행복해야 하는 것일 게다.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에 기대는 시간을살아서는 안 된다. 매일 다시 태어나게
됨을 고맙게 여기고, 가치 있는 순간들로 채워나가는 것, 이것이 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대웅전 처마 밑에 앉으니,‘범종루梵鐘樓’너머로 이웃한 성당의종탑이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한다. 대
웅전과 붙어 있는 천불전으로 향하니,보살들의 기도모습이 여느 절과 다르지않다.
경내에는 약 80여 명의 유아들이 모여 드는 유치원이 하나 있다. 연화유치원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봄빛같이 고운 아이들이가득하다. 어린 새들처럼 재잘거리는 아
이들을 누군들 예뻐하지 않을까? 각기개성도 뚜렷하고, 표정도 다른 것이 거조암의‘오백 나한’을 떠오르게 한다.한동안 작은 연꽃들을 지켜보며, 한없는평온함을느꼈다.
해질 무렵‘연화사’를 나와 다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 시장에서 만나는 이들을사천왕삼아걷는다.모두가 평온하고 건강한 여행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