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마시지 않기, 험담하지 않기, 매일매일 운동하기, 한달에세번착한일하기…. 다짐한것들도많았
고 그만큼 핑계도 많았다. 그제는 너무 바빴고, 어제는 회식이 있었고, 오늘은 피곤했다. 12월과 1월은 후회와 다짐의 연속. 그러면서도 달력 31칸이 모자랄 정도로 가장 화려한(?) 나날들을 보내는 시기다. 이율배반이란 단어는 12월과 1월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모르는일이다.
축복처럼 온 세상에 눈이 내렸다. 일부 지역에서는바닥에 쌓인 눈이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또 다른 지역에서는 대설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그래도 눈은 겨울이 주는 가장 큰 선물. 실천하지 못한 스스로의 다짐들을 배낭에 주워 담고 가야산으로향했다.
늦은 오전 해인사에서 몇 잔의 차를 얻어 마시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에 소복이 쌓인 눈 위로부지런한 사람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눈이 내렸음에도 아직 얼지 않은 계곡의 물소리는 겨울새 지저귐만큼이나 청명했다. 폭설이 아니었음에도몇몇 코스에서는 가야 할 길이 선명하지 않았으며 특히 개울을 건널 때는 길이 끊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안내자가되어주었다.
약 1시간 정도 산을 오르자 보물 제222호인 마애불입상이 나타났다. 납작한 자연석 위에 양각된 마애불입상은 당당한 형상의 얼굴과 어깨에 비해 양손과 가슴에 늘어진 옷 주름은 부드러운 곡선미를 보여주고있었다. 얼굴 윤곽선이 많이 흐려진 것이 아쉬웠지만천년의 시간을 지켜온 훌륭한 예술품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곳에서 다시 30분 정도 산을 오르면 또다른 석조여래입상을 만나게 된다. 등산로에서 살짝벗어난 이유도 있겠고 마애불입상에 비해 규모와 작품성에서 뒤떨어지는 연유 때문인지 등산객의 발걸음이 비교적 뜸한 곳이다. 그래도 소박한 모습에서 편안
함을느낄수있는석조여래입상이다.
정상에 다다르면서 콧물이 흐를 정도로 바람이 강해졌고 지형도 바위투성이의 험한 길로 바뀌면서 정상을 코앞에 두고 고전을 해야 했다. 그래도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에 좀더 가까워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음만은 가벼워지고있었고 크고 작은 바위들을 하나하나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 상왕봉이라는이름 대신 가야산의 옛 이름 우두봉이라는석비가등산객을맞이하고있었다.
정상 꼭짓점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야산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산맥들이 평원보다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고희고 검은 겨울산들을 넘어 힘차게 달려온 바람들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순간, 이‘바람’이 어깨에 걸려 있는 이루지 못한 다짐들의 무게도 거둬가 주면 좋겠다는‘바람’을 가져보았다. 세상살면서 꿈꾼 것 다 이루며 사는 삶 몇이나 되겠는가. 조금은 게으르고, 조금은나태하게 살아도 탓할 사람 누가 있을것이며 이루지 못한 다짐들을 손가락질할 정도로 반듯한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처음과 끝이 같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삶에서 12월과 1월이 존재하는 한 다짐과 후회는 떠나지 않을 것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조금 느리더라도 천천히걸어가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란생각이 들었다.
백운동 매표소에서 올라온 등산객 몇이 정상 바로 아래서 어느 길로 하산할것인지 의논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그러나 고민도 잠시, 아직 가보지 않은백운동 길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1월이그렇듯새로움은늘가슴을설레게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