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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보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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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박동식 2026년 09월 535호
아이들과 담소를 즐기시는 주지스님 계절은 절기를 잊은 채 포근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집 밖에만 나서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이 봄일것만 같았고 벌써부터 지천으로 꽃이 피어났을 것만같아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몸은 자꾸만 다시짐을 꾸리라고, 또 떠날 때가 되었다고 독촉하고 있었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가슴에 내려앉은 한낮의 햇빛은 봄보다 화창해서 외투를 벗지 않고는 운전을 할 수가 없었고 끝내는 운전석 창을 살짝내리고 실내 공기와 세상의 공기를 자리바꿈하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 대지는 봄이 아닐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포근한 나날이어도 그것은 긴 겨울을 지나온 후의 상대적 체감일 뿐이고 계절에도 예외 없이 순리라는 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어쩌면 그것은 떠나기 위한 하나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을지도모르는일이다.
함양 읍내는 여느 읍내와 다름없이 과하지 않은 활기와 부족하지 않은 단아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군청앞 2차선 도로를 지나면서 과연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사찰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미리숙지한 대로 방앗간을 지나고 다방 골목으로 우회전을 하자, 마치 고매한 인격체처럼 보림사가 자리하고있었다.
보림사는 1912년, 당시 벽송사 주지스님이셨던 김동운 화상에 의해 건립되었으니 95년의 역사를 갖고있는 사찰이며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사찰로는 드물게 터가 제법 넓은 편이었다. 스님들에게는 지리산 사찰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었고 1929년관내 6개 사찰이 연합으로 운영했을 무렵에는 읍내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을 이용해 포교사업의 일환으로 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동네 어르신 중에는 이 유치원을 다녔던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가끔어린 날을 추억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972년에 지어진 불교회관은 주민들의 결혼식 장소로도 사랑받았을 정도로 보림사는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날도 마당에는 놀러온 동네 아이들의 재잘거
림이 끊이지 않았고 보림사의 새 식구가 된 진돗개 장군이는 아이들에게 벗이상의 의미가 있는듯했다.
원래 보림사에는 인법당만 자리하고있었는데, 2004년 중창불사를 발원하여대웅전을 중건하였다. 아직 단청이 되어있지 않은 처마와 법당 내부는 알싸한나무 향이 맴돌고 있었고 법당 바닥 깊
숙이 들어앉은 오후의 햇살은 평온과 자비를 닮아 있었다. 또한 정남향을 하고있는 대웅전은 지리산 천왕봉과 마주하고 있어서 법당 문을 열면 석가모니부처님이 천왕봉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형상이다. 대웅전 좌측의 미륵전에는 옛 용산사지 근처에서 출토된 석조여래입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불상의 얼굴 부분이심하게훼손되어있어아쉬움이남았다.
보림사에서 도보로 불과 5분 거리에는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어 있는‘함양상림’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시대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홍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숲이라고 전해지는
이곳은 보전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경관이 수려해서 함양의 으뜸 볼거리 중에하나다. 더욱이 몇 해 전부터 상림을 따라 약 2만평 규모의 연밭이 조성되어,꽃이 필 무렵이면 장관을 이룬다. 보림
사에서는 이 기간에 주지스님이 직접 연차 시음회를 열어 간접적인 포교활동을해왔는데 올해는 지역 축제와 보림사를 연계하는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구상하고있는중이다.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포교활동을 통한 불교 진흥에 크게 기여하고있는 보림사는 이렇듯 주민과 늘 호흡을같이하며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포교활동을하고있는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