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들산들 봄바람이 불더니 잎을 틔운 싹들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렸다. 그리고 며칠간 고사리순보다도작은 잎들이 조금씩 커졌고 이후 또 한 차례 내린 비로 인해 계절은 완연한 봄을 확정짓는 봄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주기적으로 내린 봄비로 인해 화사한 꽃잔치는 끝물을 맞이했지만 덕분에 세상은 더욱 푸르러졌으니미워할수가없었다.
차를 두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차를 버리고떠나는 여행이 실로 얼마만인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나의 여행은 늘‘운전’의 족쇄로 인해 자유롭지 못했다. 서울에서 진주는 3시간40분 남짓 거리였다. KTX가 개통된 이후 3, 4시간 거리도 멀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으니 혹자는 제법 긴 시간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거나, 원고를 구상하거나, 단잠을 잘수있다는것만으로도모든것이보상되고도남았다.
호국사는 유서 깊은 진주성 내에 있었다. 진주성은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였던 곳이며1593년6월왜군이다시쳐들어왔을때는군관민6만이 최후까지 항쟁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곳이다.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고 그것을 자축하는 왜군들의 자축연에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한 논개가 적장을안고남강으로투신하였던곳이기도하다.
잘 정비된 진주성 내에는 관광객만큼이나 많은 지역 주민들이 산책을 나와 있었다. 속보로 성곽을 돌며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넓은 잔디길 옆 벤치에앉아 담소를 나누는 노부부들도 보였다. 외지에서 온관광객들만이 살짝 들떠 있을 뿐, 그들의 모습은 이미푸르러질 대로 푸르러진 잔디와 나무들같이 여유로운모습들이었다.
기나긴 역사의 의미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어떤동요도 없이 천천히 흘러가는 남강을 바라보며 산책길과 성곽을 따라 진주성을 가로지르니, 진주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촉석문의 정반대편에 호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진주성 내에서도 조금은 외진 곳이어서인지사람들의발길이조금은뜸해보였다.호국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원래의 이름은 산성사였다고 한다. 고려 말기 왜구를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을 기르기 위한목적이 있었다고 하며 실제 임진왜란 때승군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진주성이 함락된 두 번째 왜구의 침입 때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임진왜란후 호국사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으며최근에는 진주성을 정화하면서 일주문자리가발견되어새로세워졌다.
법당 안에는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불자 뒤로 따사한 봄 햇살이 깊게 들어와 있었고 법당 마룻바닥에 반사된 이 햇빛은 사방으로 산란되어 조명 없이도 법당내부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따금씩 기웃거리는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들리는 삐거덕거리는 소리는 조용한 경내에 풍경소리처럼 정겨운울림으로 퍼졌다. 완연한 봄을 증명하듯아기의 속살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잎들도 법당 처마의 단청과 함께 싱그럽기그지없었다. 시내에 위치하면서도 산중의 암자 못지않게 고즈넉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호국사. 요사채 돌계단 그늘에앉아 잠시 눈을 감아보는 것만으로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더듬어보는 시간이되는듯싶었다.
담장 밖에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몇 십 명의 여학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저마다 원하는 자리에 앉아 나무와 사찰 외부를 스케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봄은 그들의 도화지 위에도
찾아왔다는생각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