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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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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박동식 2026년 09월 535호
제천 덕주사 / 빗소리마저도 도량을 깨우는 외침이 되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목적지가 끝자락 경남이 아니라 두 시간이면 족한 충북이었기 때문이다. 객지에서 하루를 묵는 것도 아니니 짐도 없이 달랑 카메라만 들고 차를 몰았다. 더욱이 풍성한 계절인데다 명산 월악산이 아니던가. 마치, 가을 소풍이라도 가는 마음이었다. 하긴 어쩌면 이것도 절집으로 떠나는 소풍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靈峰의 높이는 1,097m. 달이 뜨면 그곳에 걸린다 하여‘월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괴산 IC에서 덕주사로 이르는 길은, 몇번이고 길을 확인해야 할 정도로 갈림과 구릉의 연속이었다. 산자락을 이리저리 휘어 도는 도로를 10여분 정도 달리자 산길로 들어서는 덕주사 이정표가 나타났다. 절은 깊은 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 옆에 쌓여진 덕주산성을 지난 곳에 풍채 좋게 자리하고 있었고 이틀째 내리고 있는 비로 인해 계곡은 꽤 급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침 주지이신 원경 스님은 잠시 출타 중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의료봉사 때문이란 것을 알고는 다시 차를 몰고 행사장인 면사무소로 향했다. 행사가 정리 과정에 있었지만 아직도 여러 어르신들이 머리와 다리와 손에 침을 맞고 계셨다. 원경 스님이 덕주사 주지로 부임하신 지 이제 겨우 100일이지만 경희대 의료불자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벌써 두 번째다. 첫 번째 의료 봉사에서는 100여분의 어르신들에게 안경을 무료로 맞춰 드렸다.

행사를 마치고 덕주사로 올라가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문을 활짝 열고 낮게 내려진 대나무 발을 올리니 연신 구름 안개를 피워내는 월악산 어느 줄기와 대웅보전이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주지로 내려오면서 지역 주민에게 베풀 것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역시 가장 필요한 것은 어른들의 건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아파도 참으며 병을 키우시는 분들이니까요. 앞으로 1년에 두 차례씩 꾸준히 진행할 행사입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처마끝에서 물줄기들이 흘러내렸고 방 안에는 한 계절을 지난 차 향이 낮게 맴돌고 있었다.
“걸망을 지고 선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도 수행이지만 지역 불교를 부흥시키는 포교 활동도 또 하나의 수행이지요.”

덕주사의 창건 연대는 587년(신라 진평왕 7)으로 처음에는 월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신라가 멸망한 후 경순왕의 장녀 덕주공주와 오빠 마의 태자가 국권 회복을 다짐하며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이곳에 3년간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덕주공주는 커다란 바위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이곳을 덕주사라고 개칭하고 죽을 때까지 머물렀지만 마의 태자는 금강산으로 올라가 신계사를 창건 했다고한다.

이토록 덕주공주와 깊은 연을 맺고 있는 덕주사는 10월 20일에 덕주공주의 위령제와 함께 산사 음악회를 개최한다. 뿐만 아니라 천 년의 세월 동안 월악산과 덕주사를 지나쳐 간 조상들을 위한 천도재도 함께 모신다.

우산을 받쳐 들고 우중 산책을 시작했다. 화강암에 양각된 산신도가 봉안된 산신각과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비문 중에 유일하게 범문梵文으로 기록된 대불정능엄신주비는 덕주사의 연륜을 대변하고 있었다. 약 40분 거리의 등산로에 자리한 마애미륵불은 덕주사의 백미라고 할 수 있지만 우천으로 올라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산을 내려오며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10월산사음악회. 마애미륵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