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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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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박동식 2026년 09월 535호
유학사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이름 붙여진 계절 이외에,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또 다른 계절들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봄이 지났는데 아직 여름이 아닌 경우가 있고, 여름은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을도 아닌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것과 저것을 확연하게 구분하기 위해 선을 그으려는 일이 어리석게 느껴질 때도 있고 무엇이든 하나의 이름과 단어로 규정짓는것도 불합리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는 가을이다. 모호하지 않은 완연한 가을이다. 여기저기서 억새와 단풍 소식이 날아들고, 바람처럼 날아든 그 소식을 따라 사람들은 이리저리 길을 떠난다. 그리고 산과 들은 선명한 계절의 옷을 곱게 차려 입고, 먼 길을 달려온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마치1년만의 외출과 1년만의 손님맞이처럼.
다시 길을 나선다. 호국의 고장 의령이다. 의령에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참한 미타산이 자리하고 있다.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의연함을 간직한 산이다. 미타산은 새끼를 보듬은 어미새의 품처럼 천년 고찰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다. 약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유학사이다. 원래 유학사는 미타산의 8부능선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조선초기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를 지낸 무학 대사가 사찰이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에 맞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부근의 형세는 마치 날아가는 학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며 예전 유학사가 있던 자리가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절이 학의 머리에 앉는 것이 아니고 학이 절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찰의 이름도 학이 절을 품은 채 머무른다는 뜻으로 유학사留鶴寺다.
때문인지 유학사는 그 어느 사찰보다 온화함과 평온함이 깊게 배어 있는 사찰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변하지 않는 무던함이 느껴지는 곳, 걸망을 지고 들어가 몇개월이고 불경 공부라도 해야할 것 같은 곳이었다. 특히 절 마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일주문이었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어 내라는 가르침을 그 어떤 일주문보다 진지하게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튼튼한 기둥 대신 이끼 가득한 돌담이 있고 팔작 지붕 대신 머리 위를 살짝 덮는 나뭇가지가 드리워져 있지만 계단을 찬찬히 오르다 보면 짧은 순간에도 속세를 잊고 피안의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처마 밑 툇마루에 걸터앉아 보살님이 내오신 고구마와 냉수로 잠시의 허기를 달래고 있으니 구름 뒤에 몸을 숨긴 가을 햇살이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며 절간 마당에 따뜻한 빛을 하나 가득 내려놓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머지않아 그 빛들도 귀하게 여겨지는 계절이 올 것을 생각하며 모든 것이 감사한 것들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벅터벅 극락전 우측 길을 오르자 유학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칠성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월이 아니고는 흉내낼 수 없는 탈색된 단청이 의연하게 늙은 노승의 귀품을 닮아 있었다. 이전하면서 남은 낡은 기와를 마당에 낮게 둘러서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멀찍이 요사채와 종무소 기와 지붕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주지이신 원담 스님은 극락전 앞 배롱 나무에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꼭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유학사의 예쁜 모습이 그 속에 숨어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마당에 떨어지는 배롱나무의 붉은 잎들을 상상해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제 다음 해의 다짐까지 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