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단풍 소식이 밀려 들고 있었지만 집 떠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바람 같은 시간이 지났다. 변변한 단풍 사진 하나 없는 처지이기에 올해는 꼭 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시간은 게으른 자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움이 산처럼 쌓였지만 기다림 없이 제 혼자 길을 가는 세월이야 말로 진정한 구도자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송계사는 덕유산 남쪽 기슭 수유동 골짜기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원효, 의상대사가 영취사를 창건한 뒤 5개 부속암자를 세웠을 때 송계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임진왜란때 전소된 뒤 숙종때 진명이 중건했고,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69년 승민스님이 다시 지었다. 이때 건립한 영취루가 심하게 기울자 1995년원정圓靜이 해체하고 문각門閣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었다.
하늘이 너무 푸르러 거침없이 내리 비친 가을 햇살이 법당 마당에 하나 가득이었고 대웅전 안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그림자가 되어 참선하는 불자처럼 앉아 있었다. 안이고 밖이고 카메라 노출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가을빛이 화사했다. 낯선 손님을 맞는 것은 백구 두 마리였다. 손을 내밀자 잠시의 경계는 이내 사라지고 소맷자락을 물고 늘어지며 그리움을 달랬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변을 맴도는 녀석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지들끼리 장난이었다.
대웅전 뒤로 돌아서자 간벌된 솔숲이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솎아진 잔나무들은 언덕 중간 중간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생육공간이 넓어진 소나무들은 더욱 건강하게 어깨를 펼치고있었다. 잘려나간 잡목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누군가의 도움과 희생 없이는 소나무 조차도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에서도 깨닫는 순간이었다.
삼성각으로 오르는 길은 그래서 더욱 단아했다. 숲안에서도 넓게 트인 시야를 확보해 주었고 오르는 계단 하나 하나가 누군가의 안내를 받듯이 가볍고 믿음직스러웠다. 삼성각은 전망대와도 같았다. 송계사의 갈색 기와들이 역광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 너머로 덕유산 자락이 바람막이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붉게 빛나는 홍시 몇 개.
나는 그것이 궁금해서 터벅터벅 언덕을 내려온 후 요사채 뒤편으로 향했다. 요사채를 한 바퀴 돌자 다시 법당 마당. 홍시는 제법 튼실하게 영글었고 아직 까치가 오지 않았는지 흉터도 없었다. 합장하며 송계사를 내려온 후 다시 도시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세상에는 첫 눈이 내렸다. 온 세상을 축복하듯 함박눈이었다. 들뜬 소식들 몇이 문자를 통해 날아왔고 나도 몇 곳에 첫눈 소식을 전했다. 조금 일찍 내린 첫눈은 결코 쌓이지 않았지만 가슴을 뒤덮고도 남을 눈이었다. 캄캄해진 도로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사이로 흩날리는 눈발은 아름답기도 하고 조금 쓸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송계사 요사채 뒤편의 까치밥을 생각했다. 첫눈이 이리 크게 내렸으니 가을 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먹이를 찾지 못한 새들이 곧 송계사 감나무로 날아 들겠구나. 겨울이 아무리 춥다고 해도 그렇게 나누며 사는 마음이 있으니 따뜻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까치야, 송계사로 가는 길을 잊지마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