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아림사 - 박동식 절기는 늘 마음을 앞선다. 아직 가슴에는 겨울이 한창인데 입춘은 벌써 지났다. 1월은 새해를 시작하는 달이요, 2월은 입춘이있으니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달이다. 3월은 새학년으로 올라가거나 입학을 하는 달이니 이 또한 시작을 알리는 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봄이 오기도 전부터 시작과 출발을 재촉하는 일들이 하나 가득이다.
그래,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멈추었던 학원도 다시 다니고, 미루었던 원고들도 부지런히 써보자. 그리고 묵은 먼지 툭툭 털듯 따뜻한 집안을 박차고 길을 떠나 보자. 그리 생각하니 겨울인줄 알았던 가슴에 개나리처럼 노란빛이 물들기 시작했고 발바닥은 이미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언제나 남쪽으로 가는 길은 그리운 님을 맞으러 동구밖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된 아림사는 고려 고종 18년(1231)부터 시작된 몽고의 침입 이후 고종 41년경 몽고군이 지금의 경남 산청군에 본영을 두고 주변을 호령하며 만행을 저지르던 시절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아홉 개의 부속 암자가 산재할 정도로 큰 규모를 갖고 있었으며 지금의 거창읍 중앙리와 상림리 일대 즉, 거창군청과 거창초등학교, 거창 세무서에 이르는 넓은 부지가 아림사지로 전해오고 있다. 같은 시대에 연수사, 고견사, 감악사, 소림사등이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고견사와 연수사뿐이다. 지금도 거창 시내에 남아 있는 아림사지 석탑과 거창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는 석조유물들을 통해서 거창의 대찰이었던 아림사의 규모를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아림사의 맥을 다시 잇게 된 것은 1940년 덕산 스님께서 지금의 위치에 조그마한 아란야阿蘭若를 마련하면서부터다.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10년 전만 해도 아림사는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 수행하기 좋은 곳이었다. 주변에는 민가도 없었고 온통 논과 밭이었으며 병풍처럼 아늑한 덕유산 자락이 감싸주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주변에 주택과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읍내 한복판만큼은 아니지만 지금은 읍내 생활권과 밀접해 있다.
때문에 차를 몰고 주택지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서 아림사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대는없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림사는 산중 사찰과 다를 것이 없이 고즈넉함과 호젓함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일주문이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을 관통하는 관문 같기도 했다. 푸른잎이 흐드러지게 피는 여름이면 더 없이 깊은 산중의 모습일 것 같았다.
그래도 읍내와 접해 있어 아림사를 찾는 신도의 대부분은 읍내 어르신들이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계시지만 어르신들은 마실이라도 나오듯 수시로 아림사를 찾는다. 한달에 두 번 열리는 목요법회의 금강경을 어려워하시는 것도 사실이지만 40~50명 정도가 참석할 정도로 성황이다. 가까운 곳에 법이 있으니 이것도 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봉사활동을 위해 1년 전에 결성한‘아림자원봉사회’도 연령 분포는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지만 이 역시 가장 열성적인 회원은 60대 어르신들이다. 한달에 한 번씩 노인요양시설을 방문해서 음식 공양, 목욕 봉사, 말동무가 되어준다. 자신의 건강을 감사히 여기고 그 건강이 남아 있을 때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10월초에 열리는‘아림제’는 지역 주민과 화합하는 자리며 먹거리 장터를 통해 마련된 기금으로 불우이웃까지 돕고 있으니 아림사는 읍내와 인접한 장점을 톡톡히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도심속에서 밝게 빛나는 사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