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죽림정사
한줌의 볕도 아까운 나날이었다. 요란한 꽃잔치가 끝난 남녘에는 푸른 신록들이 돋아나고 있었고 아직 왕성한 광합성 작용을 하지 않은 잎들은 여리고 여려서 어린아이들의 고사리 손을 닮아 있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아쉽다는 듯 여직 가지에 매달린 꽃잎을 날리고 이제 막 세상과 조우한 새순들을 가볍게 쓰다듬고 지나갔다. 봄이 사라졌거나 너무 짧아졌다는 말들이 들렸지만 여행자의 눈에 봄은 여전히 봄이었다.
복사한 지도를 철석같이 믿으며 거창 읍내를 지나 김천으로 향하는 3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볕도 아깝고 바람도 아까워 차창을 열어두었다. 인터넷 주소 검색을 통해 복사한 지도는 동변리 어디쯤에서 우회전을 하게 되어 있었다. 좌측 길은 안중에도 없이 행여 길을 놓칠세라 우회전 갈림길만 나오면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예상했던 죽림정사 이정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행자의 직감으로 적당한 갈림길에서 우회전을 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자리에서 좌회전을 했어야 했고 좌측 모퉁이에는 어엿한 이정표도 세워져 있었다. 결국 우회전했던 자리로 돌아와서도 또 한번 엉뚱한 길로 들어선 후에야 죽림정사를 제대로 찾아갈 수 있었다. 인터넷도 다 믿을 것은 못 되는 세상이었고 원하는 것만 보려는 편향된 시각은 자칫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란 생각을 했다.
죽림정사 일주문은 기대 이상으로 고풍스럽고 독창적이었다. 두 개의 팔작지붕 사이에 또 하나의 팔작지붕이 올려진 2층 피라미드형이어서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거주하는 중국의 어느 산중 사찰에라도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역광의 대웅전 역시 천년 고찰의 고색古色이 부럽지 않은 모습이었고 법당과 일주문 사이를 연결한 연등 줄은 곧 다가올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고 있었다. 마당의 경계심 가득한 발바리들은 눈치를 살피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행자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법당 문도 열어보고 창호지를 바른 격자살문의 요사채 툇마루에도 앉아보고 단
풍나무가 심겨진 법당 옆 화단 언덕에도 올라보았다.
작지만 품위가 느껴지는 죽림정사는 여행자의 마음을 너무도 쉽게 흔들어 버렸다.
죽림정사는 거창군 대야리 가천에 위치한 심원사가 전신이다. 황강 상류의 지류 중 하나인 가천 옆에 자리했던 심원사는 합천호가 생기면서 수몰 예정지가 되었다. 절의 이전 자리를 찾아다니던 노스님은 지금의 죽동마을에 터를 잡았고 1983년 요사채 일부 목조 구조물과 5층탑을 이전하고 새로 지은 법당에 부처님도 모셔왔다. 그러나 심원사는 합천호가 생긴 후 발아래까지 물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수몰은 되지 않았다.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심원사는 공부하는 스님들의 선방역할을 대신했다.
요사채 마루 깊숙한 곳까지 찾아들어 온 오후의 햇살은 포근하다 못해 나른하기까지 했다. 이미 강아지 한 마리는 햇살 아래 벗어 놓은 신발옆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경내는 조용했지만 주지이신 일광 스님은 노스님과 도반스님, 공양주보살과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 세 마리까지 합하면 우리도 대식구라고 자랑했다.
저녁 공양은 스파게티라고 했다. 죽림정사 된장이 맛있으니 여행자에게는 특별히 된장찌개를 대접하겠다고 했으나 감사한 마음으로 거절하고 스파게티로 통일했다. 절집에서 먹는 의외의 스파게티는 고급레스토랑 요리보다 훌륭했다.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죽림정사를 출발했다. 손에는 챙겨주신 햇쑥차까지 들려 있었지만 욕심 많은 여행자의 마음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죽림정사에 빼앗긴 마음 때문인지, 맛보지 못한 된장 때문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된장을 핑계로 다시 걸음 해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