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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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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우리의 모든 삶이 인연 따라 오고 가는 것이라면, 나에게도 해인사와 무의식중에 닿았던 오래전 인연이 기억 주머니 속에 남아 있다.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학부모 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위원회 의결 안건이 학교 측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지만 뜻을 관철시키자는 의견으로 돈을 거두었다. 하지만 교육적 방법에 어긋나며 명분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독 나 자신만 동참을 거부했다.
그러나 돈이 문제 된 것이 아닌, 방법과 명분 때문에 거부한 것이기에, 동참하지 않은 만큼의 돈을 불우 이웃돕기 성금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문을 살피던 중,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란 활자가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신문사에 송금했다. 그 땐, 불교나 해인사에 전혀 인연이 없었지만, 단지 문화재 보존 성금이라는 명분이, 동참하지 않은 이유에 합당하다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다. 그리곤 잊어 버렸다.
그렇게 잊혀진지 5, 6년이 지나고 붉게 물든 단풍들이 계곡을 덮어버린 홍류동 가을의 환영을 받으며 우연히 해인사와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내게 해인사라는 세 글자가 아직까지 가슴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처럼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인 잔잔한 인연들이 조금씩 쌓여 왔기 때문일 것이리라. 그리고 이런 소소한 인연들의 결집이 해인지와 징검다리가 되지 않았을까? 낡은 기억 주머니를 헤집으며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해인사는 화엄의 철학과 사상을 천명하고자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신라시대(802) 화엄십찰의 하나로 세워진 대가람이다. 해인은 화엄경 중에 나오는 해인삼매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海〕속에 비치는〔印〕경지를 일컫는다고 한다.
산의 생김새나 지세가 뛰어나 영남제일의 산이라 불리는 가야산은 해인사를 품에 안고, 해인사는 걸출한 인물과 귀중한 문물을 품고 있다. 조선 태조 7년에 천년 보물인 팔만대장경을 품으며, 법보사찰로 권위와 위엄도 갖게 되었다. 국보와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는 해인사는 그로부터 또 600여년이 지난, 1995년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건물인 장경판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대장경 자체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어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며, 외국 관광객들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되었다. 초조대장경 1천년이 되는, 2011년에는 대장경 천년 엑스포가 열릴 예정이다. 나라와 백성의 결집된 힘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고, 그 고난은 항상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되어 급박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팔만대장경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일주문 오른쪽에는 언제 조성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가야국 왕후의 일곱 아들에 대한 애달픈 모정과 가야산 칠불봉에 얽힌 전설이 살아있는 영지(影池)가 있다. 천년 전설을 품은 채, 가야산의 빼어난 사계를 영지에 불러 들여 중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더니, 올해엔 부평초가 피워낸 붉은 연못 위에 가야산 그림자를 띄워 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왕후의 애달픈 전설을 위로하듯, 시시각각 한 폭의 색다른 겨울 그림을 토해내고 있어 영지의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