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영지갤러리

하늘이 품은 수행도량 청암사 수도암

다음 게시물 이전 게시물
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불령산 꼭대기에서 산수화를 그리던 구름이 반가이 마중을 나선 듯 살금살금 내려와 암자 주위를 아늑하게 감싸고돈다. 조용하고 한적하던 암자에 금새 또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원주스님이 달이는 산사의 짙은 다향이 구름 꼬리에 살짝 걸치자 가늘게 비를 뿌리며 하얀 꼬리를 감춘다. 뽀얀 구름으로 채색된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운해 속에 잠겨있는 한적한 암자, 하늘이 품은 수행도량의 신비가 흐른다. 세상물이 들지 않아 세상의 잣대가 적용될 수 없는, 세상과 완전히 떨어진 수행도량. 몇 해 전 여름에 찾았던 첫 느낌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는 수도암을 이 겨울에 다시 찾아보았다.

김천에 있는 수도암은 해발 1317m의 불령산 고지 1050m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 국사가 터를 발견하고 후세에 무수한 수행인이 많이 나올 도량이라며 7일 동안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살아있다. 풍수 지리학적으로도 선녀가 비단을 짜는 형상이라 수련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는 수도암은 실제 창건 이후 끊임없는 고승들의 수행처가 되었다. 선원을 개설한 경허스님을 비롯하여, 한암, 보문스님 근래의 동산, 금오, 전강, 구산스님이 수행 정진 했고 현재 송광사 방장으로 계시는 보성스님이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수도암이 전란의 깊은 상처로 낡고 퇴락되어 폐사가 되었다. 폐사된 수도암을 현재의 모습으로 중창 하신분이 현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다. 신을 신고 예불을 드리는 것이 마음에 걸려 법당 불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법전 스님은 1969년 이곳에 오셔서 15년 동안 머물며 도량을 크게 중수하고 선원을 개설했다.

수도암 마당에 들어서면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한 모습의 관음전과 가장 먼저 만난다.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빛바랜 단청과 연꽃 문살이 멋스러운 대적광전과 약광전이 나란히 맞이한다. 대적광전엔 높이 2.52m의 거대한 비로자나 석불이 모셔져 있다. 이렇게 거대한 불상을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모셔 왔을까? 상상으로는 불가능하다. 전설 속에 묻힌 그 불가능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경남 거창의 불당골에서 불상을 조성하여 모셔올 일을 걱정하던 차에 한 노승이 나타나 불상을 등에 업고 달려 수도암에 거의 다 와서 칡넝쿨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노승은 산신령을 불러 “부처님을 모셔 가는데 칡넝쿨이 웬 말이냐? 앞으로 절 주위에 칡넝쿨이 절대 자라지 못하도록 하라” 고 호통을 치고 사라진 후 지금도 칡넝쿨이 일체 자라지 않는단다.

비로자나불의 시선을 따라 가면 저 멀리 한 송이 연꽃처럼 솟아오른 가야산 정상과 마주친다. 겨울엔 청초한 백련의 모습으로 피어오르고, 가을엔 우아한 홍련의 자태를 드러내는 이곳을 수도암에서는 연화봉이라 부른다.
대적광전 앞뜰에 화려하지 않은 단아한 모습의 석탑과 석등, 도선 국사 창건비의 검은 이끼가 천년의 세월과 고된 역사의 시간을 견디어 온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대적광전 오른편에는 깨우침을 향한 구도자의 치열한 정진이 이어지는 선원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오직 눈 밝은 납자를 키우려는 염원으로 인재불사에 온 힘을 기울이신 법전 스님의 피와 땀이 농축된 곳이다. 선원을 짓기 위해 청암사 옆 산판까지 왕복 50리 길을 하루에 몇 차례씩 걸어서 인부들과 대들보를 옮기고 서까래를 져 날라야만 했다. 수많은 짐을 져 어깨가 돌처럼 굳어지고 자갈풍이 생겨 소금 찜질을 하면서도 수행자의 본분을 잃지 않기 위해 승복을 벗지 않고 일을 하셨다는 법전 스님의 모습이 선원위로 겹쳐진다.
나한전으로 가는 석교 아래 작은 연못으로 시선이 머문다. 또래 없는 어린상좌가 안쓰러워 통나무배를 띄워 놀게 했던, 그 연못은 없어졌지만 상좌에 대한 가슴속 사랑과 자상함이 가득 묻어난다.

법전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오솔길을 따라 법전대에 올라선다. 정결하고 생기가 흐르는 도량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의 생각 한 구절을 떠올리며 둘러보던 발걸음을 마무리 한다.
어두운 날을 살았던 건, 어두운 마음으로 살았던 거다. 문득 나를 놓고 기다리면 말없이 서있는 것들과 말없이 지나가는 것들이 보인다. 저 숲은 제 몸 하나 푸른 것으로 늘 푸른 날 속에 서 있고 그 곁에 모여든 새들의 울음소리는 그 푸른 날 속으로 번지고 있다. 어리석은 마음으로 어리석은 날을 살고, 부처의 마음으로 부처의 시간을 사는 거다. 겨우 손톱만한 마음으로 부처의 세상을 만날 수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