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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에 뜬 조사도량 운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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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雲浮菴, 선원목록을 살피다가 글자 속으로 단번에 빨려 들어간다. 구름에 떠 있는 암자, 자연이 감추어 둔 암자의 신비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욕구로 전화기를 들었다. 은해사의 산내 암자란다. 며칠째 구름 속을 헤집는 날씨는 눈과 비를 번갈아 뿌리며 봄기운과 힘겨루기를 멈추지 않더니, 이윽고 폭설까지 퍼 붇는다. 계절의 길목을 가로 막던 폭설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이기지 못하고 봄볕에 꼬리를 내린다. 춘설의 작은 흔적만 남은 팔공산 자락, 은해사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속살을 드러낸 너럭바위들이 계곡을 덮은 황토색 콘크리트의암자로 가는 길은 너무나 한적하다.

절을 세울 때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나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하는 운부암은 711년 성덕왕 10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예로부터 ‘북마하 남운부’ 란 말이 전해진다. 최고의 수행처로 북에서는 금강산 마하연. 남에서는 팔공산 운부암을 꼽았다. 팔공산 줄기가 용트림하여 내려오다가 좌청룡 우백호로 자리하고 그 기운이 덩어리로 뭉쳐져 천하를 누르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좌청룡 우백호를 끼고 흐르는 계곡물은 마당 앞 연화지에서 합수 되어 범종 형국의 연못으로 모여든다. 5곳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5개의 연못을 이루는 5井(정) 5池(지)의 명당조건까지 모두 갖춘 곳이다. 조계종의 선맥을 이은 고승대덕들과 선지식들이 두루 거쳐 간 수행처로 더욱 유명하며 경허스님을 비롯하여 만공 동산, 운봉, 한암, 청담, 향곡, 성철스님 등이 수도하였다. 현 선원장 불산 스님이 일타 스님의 권유로 선원을 중수하여 수백 년을 이어온 선승들의 쉼 없는 구도 행렬이 이어지는 도량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팔공산을 휘돌아 감돌며 한참을 따라오던 구름이 하늘을 덮은 노송에 걸려 연못에 빠진다. 거기엔 구름이 걸린 운부암도 담겨 있다. 암자를 담고 있는 맑은 연못에서 구름을 건져내고 내 그림자를 띄워 인사를 건넨다. 절집의 화려한 단청은 구름 따라 떠나고 맨살의 갈색 전각에서 자연을 응축한 정갈한 아름다움이 흐른다. 보화루에 올라서니 정면은 청동보살좌상이 모셔진 원통전, 우측은 운부난야, 즉 선방이다. 왼쪽은 요사채인 우의당, ㅁ 자형 마당 한가운데 석탑의 일부가 단아하게 놓여있다. 우의당 벽에는 ‘쉿. 달마 스님은 참선 중. 선원 스님들도 공부 중. 참배는 조용히….’ 그림으로 화현한 달마 대사가 나그네의 뒷발을 들어 올린다.

신선들이 사는 구름위의 절집이라 사부대중이 북적거리면 가라앉게 된다는 암자, 그래서 일까? 인적 하나 없이 고요로 채워진 절 마당, 바람조차 숨죽이며 지나고 있는 호젓한 암자다. 구름이 많이 모이면 비로 변하는 자연의 섭리를 말없는 가르침으로 일깨운다. 웅장하고 화려한 전각은 없지만 삼월의 매화에 지독한 겨울의 눈보라가 있듯이, 티끌 같은 세상을 벗어나 참 나를 찾으려는 구도자의 깊은 고뇌가 눌러 붙은 선승의 향기가 진하게 전해지는 도량이다.

한철 수행으로 “여기서 내 공부는 끝냈다. 이 멋진 도량의 진기를 빼라”며 향곡스님께 자리를 넘겨주고 마하연으로 떠났다는 성철스님의 수행 일화를 들어 본다. 추운 겨울, 선방에 군불을 지펴 놓고 아궁이 앞에서 선정에 든 성철스님, 먹이를 찾아 내려온 노루가 온기를 느낀 아궁이로 찾아 든다. 성철스님이 앉아 있어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옆에 앉아 불을 쬐고 있다가 뜨거워진 불에 몸이 가려워진 노루는 성철스님 몸이 막대기인양 비비고 문지르며 가려움을 긁고 있었다는 어느 노장의 목격담을 선원장 불산 스님이 전해 주신다.
선승의 숨결과 체취가 켜켜이 내려앉은 보화루 빈 의자에 앉아 막연한 그리움에 젖어 본다. 성철스님도 새벽달 아래 바라지창을 열고 잠시 마음을 식히셨으리라....
눈 밝은 납자의 기다림으로 굽은 기둥과 대들보는 천장과 지붕을 나누어 이고, 단청을 흘려보낸 빛바랜 나뭇결이 천년의 시간을 갈색 침묵으로 지키고 섰다. 마음 한 점 모으지 못함이 가슴을 누르지만 신선이 사는 도량에 내 마음 던져 넣고 눈과 귀가 잠시라도 밝았음에 미련을 덜어 내고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