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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방의 신비 지리산 칠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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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4월의 중턱, 소리 없이 다가오던 싱그러운 봄이 어디에 눌러 앉았는지, 눈과 비를 앞세우며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봄이라면 내가 가서 모셔 오리라. 녹차 잔에 우러난 매화향이 그윽한 남녘, 하동 칠불사의 봄을 모시러 나선다. 연한 새싹들의 부드러운 반란과 진달래의 핑크빛 함박웃음이 가득한 지리산 계곡의 산허리를 타고 돈다. 노란 산수유 꽃구름이 흘러간 구례를 지나자, 섬진강변에 드문드문 얼굴을 내민 복사꽃의 연분홍 미소가 분바른 새색시의 수줍은 볼을 타고 가슴으로 젖어든다. 쌍계사 십리 벚꽃은 화려한 꽃비를 뿌리며 연한 잎새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계곡의 완만하던 도로가 오르막을 향하자 지리산 비탈의 야생 차밭을 끼고 돌고 돌아 칠불사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란 현판의 칠불사는 김수로왕과 일곱 왕자의 신비가 살아 숨 쉬는 가락국 왕조의 호흡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처음 가야산에서 수도하던 일곱 왕자는 의령 수도산을 거쳐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끊임없는 수행정진으로 모두 성불하였다. 성불 소식을 들은 김수로왕이 기뻐하여 절을 짓고(서기103년) 일곱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여 칠불사라 불렀다.

칠불사의 불가사의한 전설의 산실인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벽안당을 이중구들이란 특이한 구조로 아亞자 모양의 구들을 놓았다. 이 오묘한 구조의 구들은 천년을 지나는 동안 보수한 적이 없으며, 한번 불을 때면 온기가 49일을 유지했다고 한다. 아자방의 네 모퉁이와 앞 뒤 가장자리의 높은 곳은 좌선처이며, 십자형으로 된 낮은 곳은, 좌선을 하다가 다리를 푸는 경행처이다. 구들 구조의 탁월한 과학성으로 인해, 중국 당나라에 까지 알려 졌으며, 1979년 세계건축사전에도 수록되었다. 저탄소 배출이 국제적 화두가 된 지금, 아자방에 숨겨진 천년의 비밀이 친환경 시대를 풀어갈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자방에는 3가지 엄한 계율이 있다. 첫째 묵언, 둘째 장좌불와, 셋째 하루에 한 끼만 식사하는 1종식이다. 엄한 계율 때문인지 조선시대 서산, 부휴, 금당, 초의, 추월스님 등, 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근세에는 용성, 석우, 효봉, 금오, 서암스님 등이 지리산 공비토벌로 불타기전 수선 안거하였던 곳이며, 지금도 수많은 청풍 납자들의 발길이 이어져 눈 푸른 선객들이 불철주야 반야의 보검을 갈고 있다. 또한 한국 다도의 중흥조 초의선사(1828년)가 다신전을 초록하여, 동다송의 기초를 정립한 곳으로 칠불사가 차사茶史에서 차지하는 위치 또한 크다.

아자방의 인공적 신비와 운상선원의 전설적 신비가 공존하는 칠불사는 현 회주이신 통광스님의 재건불사로 복원된 지 30여년에 불과하다. 때문에 2천년 녹아내린 세월의 자취는 지리산의 침묵 속에 묵묵히 갇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숭고한 장인의 혼을 담은 대웅전의 목조탱화는 미래의 국보가 칠불사에 존재함을 예시하고 있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거대한 규모의 목조 탱화는 잔잔한 떨림의 전율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놀라운 감동을 준다. 모든 벽면의 탱화를 나무에 일일이 조각으로 완성한 젊은 장인은 약혼도 파기하고 출가하여, 현재 동국대 교수스님으로 재직 중이다.

운상선원 오솔길에 흩뿌려진 진달래 꽃잎에서 봄이 한 걸음 지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계절이 풀어 논 연분홍 꽃길에, 파릇파릇 기어 나온 연두색 풀잎 위로 부처의 미소가 동그랗게 녹아내린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먼 산야를 휘감아 돌 칠불사 종소리에 고이 얹어 세상에 내보낸다. 보설루 언덕에 손을 잡고 어울린 청매와 홍매의 가지마다 내려앉은 봄 햇살도 매혹적인 향을 앞세우고 꽃잎 속에 담겨있다. 칠불사의 봄과 매화를 눈에 담고, 부처의 미소를 종소리에 얹어 카메라에 쟁여 넣었으나 내 마음의 봄을 챙겨 모셔오지 못함에 가슴 한 켠을 덜어낸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 다 녔네. 허탕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송나라 비구니 스님의 오도송에 봄 내음도 묻히지 못하고 돌아온 나를 통째 담궈 둔다.
취재를 위해 칠불사까지 안내해주신 현정 스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