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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속 기기암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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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신기사바身寄娑婆 심기극락心寄極樂’ 몸은 사바세계에 의지하고, 마음은 극락세계에 의지한다는 오묘한 뜻을 지닌 기기암을 찾아간다. 자연을 즐기는 사람은 걸어가고, 자연을 아는 사람은 마음으로 가고, 자연을 모르는 사람은 차를 타고 간다고 했다. 팔공산 은해사 앞에 차를 세우고 홀로 걷기 시작한다. 물길을 건너 산모퉁이를 돌자 빼곡하게 둘러싸인 대나무 숲속에 암자하나 숨어있다. 엉거주춤 대나무 울타리 안을 기웃거려 보지만 서걱거리는 바람만 살고 있다. 바람이 남긴 댓잎 소리를 꿰어 귀에 걸고 가던 발걸음을 옮긴다.
구불구불한 숲길, 어설프게 포장된 콘크리트 위로 오월의 숲 그림자가 그물처럼 내려 앉아 내 그림자를 밟고 따라온다. 한적함이 잔뜩 묻어나는가? 했더니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소리의 울림이 숲속을 가득 메운다. 걸림 없이 여여하게 살아가는 산새들의 재잘거림에 번뇌를 던져 올리고 걸음을 재촉한다. 꽃보다 더 아름답게 나풀거리는 연둣빛 잎새에 망상의 끈을 옮겨 메고 산 고개를 휘휘 돌아든다. 고운 햇살을 안고 부서지는 하얀 물줄기에 욕심도 실어 보낸다. 계곡을 타고 흐르던 맑은 진동 소리가 갑자기 둔탁해짐은 덜어낸 내 욕심만큼 무게가 더해졌음이리라. 짊어지고 온 무거운 욕심, 번뇌, 망상을 다 보내니 홀로 걷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2km의 연녹색 터널을 지나 산허리를 돌아들자 아기 다람쥐가 재빠르게 인사하고 휘어진 길로 사라진다. 다람쥐가 사라진 길, 저 끝에 기기암이 앉아 있다.

굽은 나무가 산문을 지킨다고 했던가? 중생이 건너지 못한 온갖 풍상을 굽은 가지에 동여 메고 마당을 지키는 구룡목에 설화가 만발하여 천년의 묵은 향기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마당 아래 정갈하게 가꾸어진 야채밭의 생명 소리에 발걸음이 멈춘다. 젖먹이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어루만져진 야채들이 작은 숨을 고르며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히 쉬어 갈수 있는 어머니 품속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암자다. 밝고 환한 웃음으로 반가이 맞아주시는 주지스님의 모습에서 고향에 온 듯 푸근함이 더해진다. 이 아늑하고 편안한 암자에 마음을 뉘고 싶은 나그네의 가방끈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일찍이 신라 816년에 정수대사가 국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안흥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고려 명종시대 기성대사가 기기암으로 이름을 변경하였으며, 그 후 몇 차례 중수 과정을 거쳤으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1975년 현 주지 인각스님이 폐사지에 남아있던 부자재들을 사용하여 법당을 짓고, 선원을 중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처럼 둘러싼 선원의 젊은 토담과 도끼로 다듬어 세운 싸리목 기둥의 곱게 늙은 법당이 조화를 이룬다. 선원중심의 암자라 큰 법당이 따로 없다. 예전 선방이던 작은 방에 자그마한 대세지 보살님이 홀로 다소곳이 앉아 계신다. 나지막한 법당에 붙은 작은 누각에서 요사채로 통하는 구름다리는 단출하고 수수한 암자에 절집의 미를 맛보게 한다.

법당과 떨어진 언덕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인 운수납자의 수행처인 선방과 요사채가 올라 앉아 있다. 팔공산 깊은 자락에 교학과 참선에만 몰두했던 선객의 수행처로 법등이 이어진 선원이다. 선원의 토담을 이중으로 두껍게 쌓아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10명의 선객이 5개월씩 면벽참선에 몰두하고 있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손으로 잡을 듯한 산자락에 조용히 내려앉은 기기암 선원, 신비한 고요의 공간을 깨트릴까 주지스님을 따라 선방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더없이 조심스럽다. 해제철이라 운수행각을 떠난 선객의 빈방을 달마대사가 지키고 있다. 벽에 걸린 소임과 법명을 적은 용상방의 양각된 서체에서 선방의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머리 위로 달아나는 화두를 붙잡으며 무명을 깨치려 새벽 별을 기다리는 구도자의 흔적이 좌복 위에 흥건히 젖어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부처를 빚어내는 선객의 모습을 그려본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망상을 이기지 못해 주지 스님께 여쭈었다. “망상이 떨어지기 전에 공부하라, 그 망상이 없으면 송장이다.”라고 하신 만공스님의 일화를 자세히 들려주신다. 망상을 끊어야만 한다는 강한 집착이 실체가 없는 번뇌에 오히려 끌려 다닌 꼴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