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사바身寄娑婆 심기극락心寄極樂’ 몸은 사바세계에 의지하고, 마음은 극락세계에 의지한다는 오묘한 뜻을 지닌 기기암을 찾아간다. 자연을 즐기는 사람은 걸어가고, 자연을 아는 사람은 마음으로 가고, 자연을 모르는 사람은 차를 타고 간다고 했다. 팔공산 은해사 앞에 차를 세우고 홀로 걷기 시작한다. 물길을 건너 산모퉁이를 돌자 빼곡하게 둘러싸인 대나무 숲속에 암자하나 숨어있다. 엉거주춤 대나무 울타리 안을 기웃거려 보지만 서걱거리는 바람만 살고 있다. 바람이 남긴 댓잎 소리를 꿰어 귀에 걸고 가던 발걸음을 옮긴다. 일찍이 신라 816년에 정수대사가 국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안흥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고려 명종시대 기성대사가 기기암으로 이름을 변경하였으며, 그 후 몇 차례 중수 과정을 거쳤으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1975년 현 주지 인각스님이 폐사지에 남아있던 부자재들을 사용하여 법당을 짓고, 선원을 중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처럼 둘러싼 선원의 젊은 토담과 도끼로 다듬어 세운 싸리목 기둥의 곱게 늙은 법당이 조화를 이룬다. 선원중심의 암자라 큰 법당이 따로 없다. 예전 선방이던 작은 방에 자그마한 대세지 보살님이 홀로 다소곳이 앉아 계신다. 나지막한 법당에 붙은 작은 누각에서 요사채로 통하는 구름다리는 단출하고 수수한 암자에 절집의 미를 맛보게 한다.
법당과 떨어진 언덕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인 운수납자의 수행처인 선방과 요사채가 올라 앉아 있다. 팔공산 깊은 자락에 교학과 참선에만 몰두했던 선객의 수행처로 법등이 이어진 선원이다. 선원의 토담을 이중으로 두껍게 쌓아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10명의 선객이 5개월씩 면벽참선에 몰두하고 있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손으로 잡을 듯한 산자락에 조용히 내려앉은 기기암 선원, 신비한 고요의 공간을 깨트릴까 주지스님을 따라 선방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더없이 조심스럽다. 해제철이라 운수행각을 떠난 선객의 빈방을 달마대사가 지키고 있다. 벽에 걸린 소임과 법명을 적은 용상방의 양각된 서체에서 선방의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머리 위로 달아나는 화두를 붙잡으며 무명을 깨치려 새벽 별을 기다리는 구도자의 흔적이 좌복 위에 흥건히 젖어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부처를 빚어내는 선객의 모습을 그려본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망상을 이기지 못해 주지 스님께 여쭈었다. “망상이 떨어지기 전에 공부하라, 그 망상이 없으면 송장이다.”라고 하신 만공스님의 일화를 자세히 들려주신다. 망상을 끊어야만 한다는 강한 집착이 실체가 없는 번뇌에 오히려 끌려 다닌 꼴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