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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없는 문 계룡산 대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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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대자암 가는 길, 총거리 200.2km, 소요시간 3시간 11분, 목적지까지는 친절히 안내 한단다. 참 신기하고 편리한 세상이다. 고속도로를 달려오는 동안 계속 내리던 비가 갑사로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그친다. 일주문 앞에 서서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갑사 가는 길을 아련히 떠 올려본다. 내용은 까맣게 타 버리고 제목만 남아 머릿속을 맴돈다. 촉촉한 대지위에 이슬 머금은 풀잎들이 초록 그늘과 어우러진 맑은 계곡을 지난다. 나뭇잎사귀 마다 영롱한 보석 한 알씩 대롱대롱 메어달고 싱그럽게 뿜어내는 산사의 향기가 온 몸을 감싸고 든다.

무문관의 대명사로 일컫는 대자암은 계룡산 자락에 자리한 갑사의 대표적인 부속 암자이다. 갑사를 둘러보던 중, 대자암 선원에서 수행 중이라는 노보살님을 만났다. 대자암으로 오르는 아름다운 오솔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앞장서신다. 비에 젖은 오솔길의 푸른 향이 골짜기를 타고 내려앉은 바위에서 우릴 기다린다. 그러나 며느님 자랑에 흥이 난 보살님의 가벼운 발걸음이 그 기다림을 애써 외면 한다. 총총한 솔잎 사이로 암자가 보이고 햇살 열린 곳에 대자암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암자라고 하기엔 규모가 크고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오직 참선수행에만 전념하는 암자이기 때문일까? 긴 침묵의 터널 속에 들어선 느낌이다.

대자암은 1965년 도봉산 천축사에 최초의 무문관을 건립한 영파당 정영 대종사(1923년-2007년)가 1993년 폐허가 된 대자암에 다시 무문관을 개설하고 입적 때 까지 머물며 수행했던 곳이다. 정영 스님은 불교 정화와 종단의 기틀을 세운 주역으로 부처님의 6년 고행을 본받아 6년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치열하게 수행에만 전념하는 무문관을 개설 선종의 수행 풍토를 일신시켰다. 무문관 수행은 일반 선원과는 크게 다르다. 일반선원은 큰 선방에서 스님들과 함께 좌선하고 울력 하면서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동. 하안거 3개월씩 수행한다. 선원 밖으로 나가진 않지만 간단한 운동도 하고 산길을 포행하면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무문관 수행은 철저히 혼자다. 2~3평의 작은 공간에서 폐문정진으로 오직 홀로 길 없는 길, 문 없는 관문을 뚫어야 한다. 밖에서 자물쇠를 채워 외부와 일체 차단된 독방에서 수년간 생사를 걸고 매달려야 하는 혹독한 수행이다. 하루에 단 한 번, 공양을 넣기 위해 뚫어 놓은 네모난 구멍이 세상의 호흡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다.

천축사의 무문관 전통이 이어져 온 대자암은 삼매당과 제2무문관, 시방당 세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자암 삼매당엔 12명의 스님이 3년 결사로 수행중이며 그 중 3명은 6년 결사로 면벽수행에 몰두하고 있다. 무문관 3년 해제철이 되면 전국에서 수백 명의 선객이 방부를 들이기 위해 몰려들어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에서 밀린 선객들의 간절한 청에 못 이겨 폐교를 임대해 개설하게 된 부여의 제2무문관은 13명의 스님이 칼날 같은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화장실과 세면장이 딸린 작은 방에서 3년 동안 묵언과 일종식으로 사시에 공양이 들어가는 것 외에는 일체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시방당은 시민선방으로 비구, 비구니스님과 재가자 38명이 한철 결제로 마음자리를 밝히고 있다. 특히 선원장스님이 직접 참여하는 재가자 용맹정진과 매주 토요일에 이어지는 철야정진은 대자암의 수행 열기를 더해준다.
삼매당 문고리에 굳게 채워진 자물쇠, 벽 아래 뚫린 작은 구멍, 신발위에 뽀얀 먼지가 선객의 흔적을 말없이 대신해 준다. 그것뿐이다. 더 이상 무엇이라곤 없다. 사방이 막힌 무명 속에서 묵언과 정진, 그리고 두껍게 내려앉은 긴 침묵이 겹겹이 지키고 섰을 뿐이다.

올 곧은 수행자의 모습을 말없는 가르침으로 전하시는 대자암 스님의 온화한 미소가 계룡산 자락을 덮는다. 노송위에 올라 앉아 저녁공양을 기다리던 산새들이 스님의 발걸음에 숨죽이며 소리 없는 법문에 귀를 세운다. 처음 뵙고 인사드리자“한 번만 합시다” 하시며 먼저 절을 하시는 스님의 인품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노보살님의 공양물, 풋사과 다섯 개와 종이 돈 50원을 금, 은 보화 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신 스님의 따뜻한 마음과 진솔한 모습에 뜨거워진 가슴이 진동한다. 아쉬움이란 다음을 기약하는 비밀의 문 일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아쉬움이 크기에 언젠가 다시 찾아올 나와의 약속을 가슴에 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