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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향기, 의성 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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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한 여름, 초록빛 향이 진하게 뿌려진 천년 숲의 푸른 환영을 받으며 웅장한 산문을 들어선다. 하늘을 덮은 울창한 솔 숲 사이로 지나는 비포장 황토 길에 싱그러운 솔향의 마중을 받는다. 노송 등에 업힌 매미들의 합창이 숲속 향기를 실어 한 여름 무더위를 잠재운다. 솔 향에 취해 삼림욕을 즐기던 산새들도 나그네를 반기며, 이름만큼 고운 자태로 절집 문을 두드린다. 바람이 깨우는 은은한 풍경소리와 천년을 이어온 목탁소리가 등운산 허리로 날아올라 구름을 타고 사라지는 그 곳에 눈길을 빼앗는 일주문이 있다. 천 삼백년 절집 무게를 아름드리 도량주의 휘어진 허리로 받치고 섰다. 자연에서 마음대로 자란 등 굽고 휘어진 노목이 어찌 이리 장엄하고 매혹적인 자태로 변모할 수 있었을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한국적 건축미를 완벽하게 표현한 장인의 안목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1,300년 세월을 묵묵히 쌓아온 고운사는 마늘의 고장으로 유명한 경북 의성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 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현재는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부석사를 비롯하여 60여 말사를 두고 있다. 연꽃이 반쯤 핀 부용반개형芙蓉半開形의 명당에 의상대사가 창건(681년)하고, 후에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켰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식량비축과 부상병 뒷바라지를 하며, 호국불교의 꽃을 피운 곳이기도 하다. 또한 수행과 학문의 산실로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거쳐 간 곳이며, 지금도 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행과 계율에 철저하고 엄격한 무욕의 삶을 살았던 수월선사, 선과 교를 겸비한 함홍대사 그리고 당대 최고의 석학 최치원은 고운사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립하고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 인연으로 원래 고운사高雲寺였으나, 그의 호를 따 고운사孤雲寺로 사명을 개칭하게 된 연유이다.
고운사의 얼굴인 가운루는 계곡의 물이 잠기는 부분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이어 누각을 받쳐 지었다. 꾸밈없는 자연을 살리고 인공미를 더하여 계곡으로 나누어진 절집을 하나로 모은 화합의 예술품이다. 자연을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어울림, 최치원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난다. 어느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수행의 향기를 속세에 전했던 선승과 유학자 최치원이 남긴 진리의 숨결이 어울려 상생과 화합의 가르침을 무언으로 던져준다. 높은 학식과 덕망을 기려 출가사문도 아닌 유학자의 호로 사명을 개칭할 만큼 넉넉한 마음을 열어온 선승의 면모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안기고 있다.

대웅전 앞 언덕위에 단청을 입지 않아 소박하고 절제된 고금당 선원과 본래의 대웅전인 나한전이 나란히 앉았다. 기왓장을 겹쳐 올린 낮은 담장과 앉은뱅이 싸리문이 곱게 닫힌 고금당 선원엔 한 여름의 뙤약볕에도 냉기가 흐른다. 생전에 64과의 사리가 쏟아진 전설적인 스님의 자취를 찾아 고금당을 뒤로 돌아 오솔길을 오른다. 산사의 고요가 내려앉은 석축위로 단아한 수월암이 고개를 내민다.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사부대중의 본보기가 됐던 수월스님이 10년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수행 정진하던 터에 선원을 복원했다. 뜨거운 삼복 더위에도 청정하고 엄격한 수행가풍을 이어가기 위해 눈 푸른 납자들의 끊임없는 정진이 이어지고 있다.

고운사, 이름처럼 외롭다. 외로워서 맑고 또 맑다. 나그네의 발걸음이 많지 않아 고즈넉한 산사의 기운이 낮게 깔린다. 절집 주변에 즐비한 상가도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료다. 입장료도, 주차장도, 우화루에 꾸며진 도서관과 호젓한 전통 찻집까지도 무료다. 누구든 마시고 싶은 차를 직접 우려 마실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차가 마련되어 있다. 책장에 꽂힌 수백 권의 도서와 천진불을 위한 색종이 놀이감도 하루 종일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나그네에 대한 섬세한 배려의 손길이 따스하게 마음 밭을 차지한다. 천년고찰 우화루 찻집, 절집에서 뿜어내는 산사의 향기를 찻잔에 우려낸다. 누각을 지나는 새소리, 바람소리에 속세의 응어리 실어 보내고 우화루 가득한 책 냄새를 마신다. 천년의 시공을 넘어 가운루에 새겨진 최치원의 흔적도 더듬는다. 불교와 유학의 최고 권위자가 창건하고 주석했던 곳, 묵은 세월에 긴 시간을 얹어 깁고 꿰매 선승의 숨결을 덧댄 곳, 선사들의 경 읽는 소리가 메아리로 남은 곳이다. 고운사에 하루 종일을 기대고도 미련이 남는다. 돌아와도 마음은 남겨두고 온 곳, 마음 돌려받으러 다시 가야 하는 곳, 그곳이 고운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