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여름 날, 자욱한 물안개를 뚫고 각화사를 찾아 나선다. 비에 젖은 산허리에 낮게 드리운 신비스런 운무의 행진이 하늘위로 구름다리를 놓는다. 산자락을 거닐던 토끼와 호랑이, 하얀 바다 속에서 승천하는 용의 무리가 구름다리를 건넌다. 그들이 몰려간 태백산 계곡엔 하늘을 내달리던 바람도 춘양목에 걸려 숨을 고른다. 촉촉하게 젖은 솔잎에서 춘양목이 풀어 놓은 고귀한 향이 전신을 감싼다. 태백산 정기가 한곳에 모인 명당이 주는 아늑한 기운이 전해온다. 유유자적 화려한 초록의 풍광을 뿜어내는 춘양목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절집 뒤로 나지막하게 내려앉은 안개가 선원의 호젓한 침묵을 지키고 섰다. 각화사는 일반 대중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절집이지만, 태백선원은 선방수좌에겐 매우 유명한 전국 유일의 가행정진 도량이다. 좌복에 앉으면 화두가 성성하게 살아 수행을 할수록 힘이 붙는 곳이라는 정평이 나있다. 각화산이 연꽃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의 태백선원은 수좌라면 누구나 한철만이라도 앉아보길 염원하는 곳이다. 탄허 스님은 천혜의 수행도량이며, 오룡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국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도 이렇게 만들기 어려운 명당이라고 극찬하였다. 현재 20명의 수좌가 하루 15시간 9개월 정진으로 무섭게 공부하는 이름난 수행처로 웬만한 구참 수좌도 방부를 들이기가 쉽지 않다. 불교계 대표적 선지식 고우 스님이 17년간 주석 했던 곳으로 수좌들의 방문이 쇄도하면서 한국불교의 선禪 전통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선원이다.
각화사 뒤편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태백산 사고지史庫址가 있다. 태백산사고는 조선시대 왕조실록등 귀중한 문헌을 분산 안치하여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후기 5대 사고 중 한곳이다. 조정에서 삼재불입지(물난 불난 전란)라 하여 태백산사고를 건립한 후 사고의 관리를 각화사에서 맡았다. 선조 39년(1606)부터 1913년 일제시대까지 300년 동안 조선왕조실록을 유일하게 가장 완벽히 보관된 곳이다. 조선왕조실록 태백본은 국보 제 151-2호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 되어있다. 건물은 해방 전·후 불타 없어지고 산사태 등으로 매몰 되었던 터만 1988년 발굴하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촉촉한 산사에 청량감이 더한다. 절집은 텅 빈 고요로 가득하다.
목탁 소리도, 불경 소리도 외면한 고요와 적막 속에 허울을 벗으려는 고독한 수좌의 끝없는 정진이 있을 뿐이다. 나눔과 비움 그리고 깨달음, 하늘 닿은 깊은 골에서 수많은 고승대덕과 천년의 고요를 담아낸 태백선원의 고고함이 꼿꼿하게 하늘을 찌른다. 댓돌위에 가지런한 흰 고무신도 흐르는 빗물에 마음을 씻어내며 주인 따라 수행의 고삐를 다잡는다.
각화사는 덕 높은 고승 아홉 분을 배출한 절이다. 절집 아래 부도는 천년 세월의 흔적을 안고 무언의 설법을 펼치고 있다. 돌무덤으로 오늘을 지키고 서있는 부도속의 고승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곧게 뻗은 춘양목이 솔~솔~솔 풀어 놓은 바람에 귀를 실어 보낸다. 바람에 실려 가는 운무의 행렬에 동승한 상큼한 솔향이 절집을 가득 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