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쁨과 슬픔이 있고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이 따르
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어느 곳이나 별
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희로애락을 풀어 놓을
환경과 그 환경에 적응해 가는 방법에 따라 서로 다른
삶과 문화를 꾸려갈 뿐이리라. 우리가 겪었던 나라 잃
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지만 불교가 모든 삶과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티베트를 찾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맑
은 영혼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으로 그들의 정신
세계와 티베트불교를 돌아보는 고우 스님 일정에 동
참하게 되었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는 매력의 땅이다. 눈이 시리
도록 파란 하늘과 장엄한 만년설, 고원의 초원에서 시
름없이 풀을 뜯는 야크떼, 끝없이 펼쳐진 광야와 신비
한 하늘호수에 담긴 그들의 정신문화와 만난다. 부처
님 가르침에는 미세한 의문도 가지지 않는다는 티베트
인들, 마니차(경전을 넣어 돌리는 도구)를 돌리며 코
라(사원주위를 순례)로 하루를 연다. 불교에서 가르치
는 대로, 더 나은 다음 생을 위해, 기도하는 순례자들
은 각지에서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이 있는 라싸로 향
한다. 역사와 문화, 정치와 종교가 총집결된 포탈라궁
은 티베트의 상징이다. 달라이라마가 거처하며 정치
와 행정을 보던 백궁과 영탑을 모시고 종교행사를 주
관하던 홍궁으로 나뉜다. 보타산에 돌과 나무, 흙으로
만 건립한 13층의 천여 개 방을 갖춘 거대한 단일 건
축물이다. 20만개의 불상과 벽화가 금은보화로 호화
롭게 장식된 달라이라마의 겨울 궁전이다. 일부만 공
개되고 1시간의 제한된 관람으로 포탈라궁의 진면목
을 살피기엔 역부족이다. 티베트인들이 일생에서 가
장 오고 싶어하는 곳, 오체투지에 나선 모든 순례자의
목적지,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심장이다. 문성공
주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사원으
로 이 불상이 티베트 불교의 전래에 중요한 역할을 했
다. 광장에는 두 팔과 양 다리, 이마를 땅에 대고 인간
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인 오체투지를 하는 사
람들로 붐빈다. 초라한 행색, 헝클어진 머리, 햇볕에
찌든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에서 피어난 맑고 환한 미
소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궁과 사원의 화려한 보물보
다 순례자의 순박한 웃음이 더 마음밭을 차지하는 귀
한 보물로 여겨진다.
느릿느릿한 거북 걸음과 붕어처럼 끊임없이 물을
마셔야 하는 7박 8일의 힘든 여정이 이어진다. 거친 호
흡을 몰아쉬고 신선한 영혼의 맑은 공기를 들이켠다.
끝없는 산길을 구름 속으로 구불구불 기어오르는 깐
바라 고개 위에 암드록쵸 호수가 마중한다. 라싸와 장
체 구간, 하늘호수를 돌아 해발 5,600m의 카룰라 설
봉을 넘는다. 장체에서 시가체까지 끝없이 펼쳐진 곡
창 지대를, 그리고 백거사와 타쉬롱포 사원에서 판첸
라마의 행적과 만났다.
고산증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코 쉽게 다가설 수 없
는 티베트 땅, 순례를 마치며 가장 온전한 형태의 선
전통을 이어온 한국불교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고우
스님은 말씀하신다.
티베트불교는 공·무아를 철저히 이해 후 보살행으
로 행복을 느끼며 끊임없는 수행과 이타행으로 불법
을 전해온 것은 훌륭하다. 하지만 달라이라마가 신격
화되어 신비의 인물로 비춰지고 정·교 일치로 종교
가 정치에 관여하는 부작용이 있다. 내세를 위한 기도
에 치중하여 방편에 자기 인생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생활을 구속하고 형식화하는 부자유한 모습이 한국불
교와는 다른 점이다.
금생의 성불이 목표인 한국불교는 선 전통을 계승
하여 법을 굉장히 깊이 본다. 그러므로 수행의 목표가
개인의 욕망에서 벗어나 언행일치만 된다면 티베트 불
교와 견줄 수 없이 우수하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이
상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순수한 불교로 현재보다 앞날
이 더욱 밝다. 일정 내내 고우 스님의 따스한 눈길과
온화한 미소는 평생의 수행에서 우러나오는 숨김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서구 유럽에서 티베트불교가 들불처럼 번져 현대인
의 가슴을 진동시키고 뿌리내리는 근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달라이라마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티베트의
아픈 역사적 현실이 그 배경에 무거운 비중을 차지함
은 아닐는지? 1,700년 역사 속에 단절됨 없이 선 전통
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불교가 티베트불교만큼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선 불교가 지니는
우수성과 역사성을 감안한 불교적 가치를 어떻게 세계
화 시킬 것인지가 풀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