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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감춰둔 절집 함양 문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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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황금 옷으로 갈아입은 금빛 들판이 가을바람 타고 춤을 춘다. 바람이 전하는 수줍은 속삭임에 긴 목 빼어들고 살랑대는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이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논두렁에 흐드러지게 핀 아홉 마디 구절초의 단아한 미소가 가을 향을 더한다. 어느 해 보다 더 곱디고운 옷을 갈아입은 단풍이 높아진 하늘만큼 도도한 자태로 가을을 품고 있다. 완숙한 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멋을 우아하게 맞이한 지리산의 가을을 찾아 문수사로 가는 길이다.
엄천강 다리를 건너자 문수사 표지판과 지리산 둘레길이 나타난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을 의미하는 둘레길, 한적한 길을 걸으며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보는 길이다. 하지만 인기 프로그램에 방영된 후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관광지처럼 변해버려 주말에는 큰 몸살을 앓고 있단다.

문수사는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함양 독바위 아래 위치한 작은 암자이다. 문수사라는 이름의 절집은 전국에 무수히 많다. 중생의 번뇌를 끊어버리고 불법의 참다운 진리를 깨닫는 문수보살의 지혜를 좌표로 삼기 위함이리라.
함양 문수사는 신라시대 무열왕 659년 마적조사가 건립한 마적사의 부속 암자였다. 마적사가 폐사된 이후 엄천사 암자로 소속되었다가 엄천사가 폐사되면서 삼존불은 밀양 표충사에서 모셔갔고 본존불은 문수사 법당에 모셨다고 전해온다. 하지만 근거가 될 만한 정확한 자료는 6.25 전쟁으로 모두 소실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민족의 혼과 정서가 우리와 함께 숨 쉬는 지리산이 민족상잔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처참했던 현장에 문수사 비극의 역사도 함께 묻혀 있다. 그만큼 역사의 아픔과 상처가 깊은 곳이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가파른 비탈길을 돌고 돌아 절 입구에 들어선다. 일주문 대신 양편으로 문수. 보현보살이 입구를 지키고 섰다. 여느 절집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점이다. 눈꺼풀 위로 내려앉은 따가운 가을 햇살을 못 이겨 오수에 빠진 절 마당, 한적하고 아담한 절집은 지리산 가슴 한켠에 아늑하게 안겨있다. 종각을 끼고 계단을 오르면 바로 대웅전이다. 오른쪽엔 요사채 왼쪽으로 문수전과 삼성각 그 아래 참회당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대웅전에 참배하고 나오자 주지스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신다. 내어주신 찻잔에 지리산이 감춰둔 절집의 향기가 가득하다. 잔잔한 고요의 향기를 마시며 절집을 둘러본다.

한 여인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고 그 안에서 도를 닦아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담은 독바위가 지리산 위로 우뚝 솟아 절집을 지키고 있다. 마당 한편 옹달샘에서 송골송골 솟아오르는 초록 물방울, 그 작은 물방울의 집합이 마당으로 넘쳐흐른다. 욕심내지 않는 삶이라면 언제나 저 샘물처럼 행복이 넘칠 수 있으리라. 소욕지족의 교훈이 옹달샘에도 담겨 있다.
문수전 목조탱화에서 뿜어 나오는 황금빛 기운이 가을 햇살을 이고 절 마당으로 내려앉는다. 오대산 계곡에서 세조의 등을 씻어준 후 사라진 문수동자가 지리산으로 오지 않았을까? 따가운 햇살을 밀치고 참회당을 뒤로 돌아 계곡으로 들어선다. 바위틈을 빠져나와 낙엽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영혼을 깨운다. 화려한 색채로 계곡을 덮은 가을의 아름다움에 취한 채 하루 종일 문수동자를 기다린다.
다람쥐와 호두를 나눠먹는 호젓한 절집, 잔잔하게 일렁이는 가느다란 바람이 잠자는 풍경을 깨운다. 북적이는 세상을 떠나 몸을 쉬고 마음을 누이는 곳, 자연 속에서 자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절집이다. 세상과 몇 발자국 떨어져 자신의 향기를 찾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에 있을까?

천년을 이어온 세월의 흔적은 전쟁의 상처에 묻혀 버리고 벌거벗은 절집의 역사는 벙어리가 되었다. 아픈 상처를 보듬으며 묵묵히 절집을 지키고 선 함양 독바위, 그의 입은 언제 열릴 수 있을는지? 요사채의 저녁연기가 아픈 역사의 슬픈 향기를 감아 안고 하늘을 타고 오른다. 지리산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동여 멘 절집은 오늘도 그렇게 불타는 석양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