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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의 전통, 망월사 천중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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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가을에 머무를 틈도 없이 겨울을 향해 내달리던 수은주가 곱고 고운 단풍잎만 오솔길에 누이곤 가파른 숨을 고르고 있다. 겨울을 향한 바람과, 단풍이 드러누운 오솔길의 만남도 불교는 인연이라 말한다. 수많은 인연으로 이루어진 도봉산과 어울려 천년을 곱게 늙어온 망월사, 그 고운 인연을 찾아간다. 물과 바람이 돌고 도는 계곡을 따라 천중교를 건너고 두꺼비 바위를 지난다. 느낌으로 메아리가 전해지는 영글어가는 인연들과 함께하는 산길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이 순간 가슴에 실린 행복만큼 도봉산이 만들어내는 바람 또한 달다.

높은 산봉우리가 깊은 계곡을 품은 곳엔 반드시 명찰이 자리하고 있다. 명산 명찰은 도인의 산실이기도 하다. 대오를 위해 세상의 잣대를 던져 버리고 목숨도 아끼지 않는 선객들이 구름처럼 모여 든다. 망월사는 선불교를 일으킨 걸출한 선승들이 치열하게 수행정진 하던 곳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인 용성스님은 일제의 한국불교 말살 정책에 위협받던 선수행 전통 불교를 지키기 위해 만일참선결사를 추진했다. 결사를 위해 오후불식, 묵언수행, 동구불출 등 뛰어난 선승들이 실천했던 수행법은 오늘날 선객들이 지켜야 할 규칙인 선원 청규로 이어지고 있다. 27년이 넘는 긴 세월, 만공, 한암, 성월, 동산, 춘성스님 등이 참여한 10,000일 참선결사는 훗날 성철, 청담, 혜암, 법전스님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듯 망월사가 한국 선불교 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만해스님의 유일한 상좌 춘성스님이 참선도량의 맥을 이어간다. 욕쟁이 스님으로 더 유명하지만 가식과 허위를 벗어버린 완벽한 자유인의 참 모습이라며 승속을 막론하고 스님을 존경했다.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원초적인 삶, 그대로를 보여주며, 이불도 없애버리고 용맹정진과 무소유에 철저했던 분이다.

신라의 서울인 월성(경주)을 바라보며 왕실의 융성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망월사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8년(639년), 여왕의 명을 받은 혜호스님이 창건하였다. 경순왕의 태자가 나라가 망한 뒤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국가적 염원이 담긴 애끓는 간절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망월사 선원은 1981년 조계종립 특별선원으로 지정되어 수많은 선객들의 수행 처로 자리 잡았다. 이후 능엄스님이 대웅전 자리에 선방과 요사채인 심검당을 짓고 천중선원이라 이름지었으며, 오늘날도 결제와 해제에 상관없이 깨달음을 찾는 선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안거에는 법랍 20년 이상 구참스님 11명을 포함하여 26명이 방부를 들였다. 산철 결제가 따로 없지만 10명의 스님들이 해제 후에도 치열하게 수행하는 곳이다.
망월사는 산꼭대기에 위치해 모든 것이 불편하고 힘들지만 근현대를 거쳐 큰 스님들이 많이 수행하신 도량이라 선객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은 살기를 원한다. “춘성스님의 욕은 직설적인 선어 그 자체였다”고 회고 하시는 축서사 무여 스님을 비롯하여 제방의 큰스님들은 천중선원을 거쳐 가지 않은 스님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현재도 워낙 맑게, 참으로 치열하게 수행중인 스님이 많아 10-20년 후에는 선승의 맥을 이어가는 걸출한 선지식이 배출될 것이라고 선원장 허담스님은 기대를 내비치신다. 온화한 목소리와 단아한 인품에서 뿜어 나오는 허담스님의 투명한 수행의 향기가 우려 놓은 찻잔 속으로 내려앉는다. 비워진 마음에 투명한 향기를 가득 채워 담아간다.
내일은 망월사 김장하는 날, 알루미늄 지게에 배추 한 짐씩 지고 수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스님, 송골송골 얼굴에 맺힌 보석들이 굴러내려 봉우리를 터뜨린다. 보석 속에 피어난 이름 없는 꽃, 이름 없는 꽃이 진하게 품어내는 수행의 향기가 온 도량을 흠뻑 적신다. ‘아니 오신 듯 다녀가시 옵소서’ 문 앞에 내걸린 팻말에 내 그림자를 주워 담는다.

천중선원, 말 그대로 하늘의 한가운데서 가슴을 토해내고 마음을 덜어낼 수 있는 무애도인의 기운이 선연하다. 백척간두에 선 자세로, 턱 밑에 송곳을 받쳐 놓고 불꽃 튀는 정진으로 깨달음을 쫓으리라. 수행정진이 끊이지 않은 선승의 서릿발 같은 가르침이 성성한 기운으로 선원을 감싸고 있다. 월봉처럼 높고 흔들림 없는 마음자리를 찾아 둥근 보름달에 꽉꽉 채워 낚아 오리라. 월조문月釣門을 들어서는 선객의 걸망에 선승의 기운으로 가득찬 화두의 무게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