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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의 향기, 대흥사 동국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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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금빛 물결 사이로 고개를 치켜든 연두색 음표가 봄비 속에 깨어난 파릇한 생명 소리로 봄의 교향곡 준비에 한창이다. 겨우내 머금은 한기를 터트리기 시작할 빠알간 동백 꽃망울과 연초록의 설렘이 가슴을 파고든다. 남도에서 피어난 가날픈 연둣빛 향기가 바쁜 걸음을 옮기는 반도의 끝자락, 해남 대흥사 동국선원으로 발길을 잡는다.

땅 끝이라 불리는 반도의 최남단, 해남 두륜산 품속에 아도화상의 창건설이 전해오는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천년고찰 대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동국제일도량이라 불리는 대흥사는 다도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초의선사와 서산대사의 사리와 의발이 봉안된 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도량이다.
묘향산에서 입적을 앞둔 서산대사는 \"천년 병화兵火가 미치지 않아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땅으로 불교의 법통이 돌아갈 곳” 이라 하여 사명당과 그 제자들에게 의발을 대흥사에 두라는 유언을 남긴다. 서산대사의 유품을 봉안하고 법맥을 전승한 대흥사는 당시 암울했던 불교 역사를 뒤로하고 13분의 대종사와 13분의 대강백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한다.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 했던 서산대사의 호국불교 정신과 “선禪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敎는 부처의 말씀”이라는 선교 합일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선가의 굵은 맥을 잇는 당대 최고의 도량으로 거듭나게 된다.

초의선사는 대흥사의 13대종사로 1824년(순조24) 두륜산 중턱에 초막을 짓고 40년간 홀로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독처지관의 수행과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사상을 바탕으로 차 문화를 중흥시킨다. 이곳이 오늘날 다도의 성지로 자리 잡은 대흥사 일지암이다. 시, 서, 화, 다에 뛰어나 4절로도 불리는 초의선사는 차 교과서로 통하는 동다송과 다신전을 편찬하여 조선 다도의 이론과 실제를 정립한다. 차를 통하여 당대 최고의 대석학인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과 깊은 우정과 폭넓은 학문을 나누며 내면의 차향을 선의 향기로 발산했다.

경내에는 추사 김정희의 필치로 새겨진 동국선원, 무량수각, 일로향실 편액을 비롯하여 정조대왕의 표충사 친필, 원교 이광사 등이 쓴 편액들이 현존하고 있어 조선 최고 명필들의 체취를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유품을 봉안하고 위국충정을 기린 곳이다. 스승의 선풍을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여 제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사찰에 유교적 사당을 겸한 것은 이례적이나 유불을 떠나 호국을 앞세운 불가의 가르침이 구현된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대광명전 구역에 깔끔하게 단장된 동국선원은 두륜산이 겹겹이 감싼 연꽃 봉우리 속에 살포시 앉아 있다. 2009년 6월 동국제일 도량으로서 가풍을 되살리고 수행환경 개선을 위해 노후한 선원을 새로 건립한 것이다. 총건평 31평, 정면5칸 측면 3칸 규모의 적조당을 비롯하여 요사채인 수심당을 새로 지어 1인 1실의 처소를 마련했다. 해우소 및 수곽을 정비하고 새로운 면모를 갖춘 동국선원은 산철에도 화두 참구의 열기가 끊어지지 않는 치열한 수행이 이어지고 있다.
서산대사의 정법이 안장된 후 위기에 처한 불교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구심점이 되었던 동국선원은 일지암이 그러하듯, 동국선원 역시 초의선사의 채취가 흥건히 베인 곳이다. 초의선사가 건립한 대광명전은 투박한 바위를 옮긴 주춧돌 위에 구부러진 나무를 그대로 세워 기둥을 만들었다. 굽은 대들보를 천장에 얹어 부처님께 자연을 선물한 천연의 향기가 묻어난다. 한 줄기 바람을 벗 삼았던 소박한 아름다움과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풀 옷 한 벌에 만족한 초의선사의 삶을 눈으로 들려준다.

비움이 채움이라 했던가? 고요 속에 또 다른 고요가 자리한다. 허전하던 넓은 공간이 선승의 향기로 가득 채워진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동국선원에서 수많은 조사가 배출된 것은 단지 서산대사의 의발을 봉안했기 때문만 아닐 것이다. 차를 통하여 법희선열을 맛 본, 초의선사의 다선일매와 서산대사의 구국 혼이 담긴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용맹정진한 결과일 것이다. 차의 향기가 몸에 베이듯 선승의 향기가 수행 속에 녹아든 때문이리라. 그것이 서산대사가 땅 끝 외진 곳에 의발을 부촉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