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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득도지 비슬산 도성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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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신선이 앉아 비파를 타는 형상에서 붙여졌다는 비슬산(琵瑟山), 봄마다 진한 참꽃 향기를 뿜어내며 연분홍 비단이 펼쳐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향기 젖은 비단 천을 걷어낸 자리에 마알간 연초록 향연이 이어진다. 잎새 위에 올라 앉아 바람 타고 놀던 맑은 햇살이 바위틈으로 새어 나오는 법문소리에 눈과 귀를 연다. 역사의 기록보다 더 많은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신비의 암자를 찾아 굽이진 숲길을 오른다.

신라의 고승 도성대사가 창건한 도성암은 경상북도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 중턱에 자리한 유가사의 산내암자이다. 아득한 옛날 가섭부처님이 이곳에 이르러 “장차 이 자리에서 천명의 성인이 나오리라”고 예언하여 예로부터 천인득도지로 불린다. 인근 지역에서 나물을 캐러 왔다가 도성대사의 법문을 듣고 사흘 만에 깨쳤다는 금물여 보살을 비롯하여 공부를 성취한 9분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두 성사(聖師), 도성과 관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관기는 남쪽 봉우리 아래 초막에 살고, 도성은 북녘 바위굴에 거쳐하였다. 그 거리가 10리쯤 되었으나 두 성사는 구름을 헤치고 달밤을 노래하며 서로 왕래하곤 했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고자 하면 산 속의 나무가 모두 남쪽을 향해 굽어 관기가 이를 보고 도성에게로 갔고, 관기가 도성을 부르려면 나무들이 북쪽을 향해 굽어져 도성이 관기를 찾아 교유했다고 한다. 유유자적하던 세월이 지나 도성이 좌선하던 바위에서 홀연히 사라지자 관기가 그 뒤를 따랐다.

도성암은 조선말 꺼져가는 한국 불교의 선풍을 진작시킨 경허선사와 만공선사가 수행 정진하던 도량이다. 영남의 3대 참선도량으로 이름난 도성선원은 만공선사의 마지막 법제자 성찬스님이 개원했다. 20년 동안 근검절약해 모은 돈으로 불사를 시작한 스님은 목재와 기와를 손수 지게로 져 나르며 선원을 신축했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험한 30리 길을 오르내리면서도 밤새 허리를 꼿꼿이 세워 정진하고 새벽 도량석과 예불을 거르지 않았던 수행자의 표상이었다. 도성선원은 현재 이름난 제방 선원을 이끌어 가는 성수, 혜국, 인각, 기후, 원융스님 등 걸출한 선객들이 모여 선풍을 드날리며 젊은 시절 용맹정진을 한 곳이다.

선방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털신 속에 산중의 봄은 아직 남아있다. 제방 선방과 달리 눈부시게 하얀 방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기부리로 쇠를 뚫듯 성불할 수 있다는 결연한 의지로 7명의 수좌가 신묘년 하안거에 든 선방이다.
안거에 든 한 수좌가 포행 중에 성찬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왜 선방을 대웅보전을 감싸는 방향을 등지고 도량에 어울리지 않게 삐딱하게 관기봉을 향해 앉도록 지었습니까?”
선방자리가 신선이 비파를 무릎에 놓고 타는 신선 탄금혈이야. 상봉에서 쭉 뻗어 내린 산줄기가 비파줄 같지 않아?” “그럼, 스님은 신선이 타는 비파 소리를 듣습니까?”
“듣지, 대현이는 못 듣지.” “예, 저는 비파소리는 못 들어도 좌선할 때 노승의 코고는 소리는 듣습니다.” 하하하……. 천진불 성찬스님의 미소가 선방 가득 환하게 피어오른다.

마음이 청정하면 도량도 청정하다. 눈에 거슬릴 곳 하나 없는 단아하고 정갈한 암자, 수행자의 내면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요사채 옆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에 시선이 머문다. 물질문명이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주지 대선스님의 흔적이다.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암자이기에 울력은 물론 도량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며 정진시간도 철저하다. 그것은 “고행이 아니라 내 삶의 벗이요, 수행의 맛”이라며 건네주신 찻잔 속에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하나로 겹쳐진다. “스승이 걸었던 길, 그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스승의 유지를 받드는 일에 전념하여 오롯한 수행도량으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을 뿐”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숙연한 마음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한다. 물질문명에 끄달리지 않고 스승의 법을 올곧게 이어가는 담백한 수행자의 멋과 추상같은 스승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청정도량에 소박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산천초목과 뜻이 통했던 두 성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암자는 두두 물물 부처 아닌 것이 없다. 천명의 성인을 기다리며 암자를 지키고 선,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천년의 세월을 기워 입고 묵언에 든 삼층 석탑, 선정에 든 도통바위가 암자를 굽어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