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털신 속에 산중의 봄은 아직 남아있다. 제방 선방과 달리 눈부시게 하얀 방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기부리로 쇠를 뚫듯 성불할 수 있다는 결연한 의지로 7명의 수좌가 신묘년 하안거에 든 선방이다.
안거에 든 한 수좌가 포행 중에 성찬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왜 선방을 대웅보전을 감싸는 방향을 등지고 도량에 어울리지 않게 삐딱하게 관기봉을 향해 앉도록 지었습니까?”
선방자리가 신선이 비파를 무릎에 놓고 타는 신선 탄금혈이야. 상봉에서 쭉 뻗어 내린 산줄기가 비파줄 같지 않아?” “그럼, 스님은 신선이 타는 비파 소리를 듣습니까?”
“듣지, 대현이는 못 듣지.” “예, 저는 비파소리는 못 들어도 좌선할 때 노승의 코고는 소리는 듣습니다.” 하하하……. 천진불 성찬스님의 미소가 선방 가득 환하게 피어오른다.
마음이 청정하면 도량도 청정하다. 눈에 거슬릴 곳 하나 없는 단아하고 정갈한 암자, 수행자의 내면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요사채 옆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에 시선이 머문다. 물질문명이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주지 대선스님의 흔적이다.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암자이기에 울력은 물론 도량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며 정진시간도 철저하다. 그것은 “고행이 아니라 내 삶의 벗이요, 수행의 맛”이라며 건네주신 찻잔 속에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하나로 겹쳐진다. “스승이 걸었던 길, 그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스승의 유지를 받드는 일에 전념하여 오롯한 수행도량으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을 뿐”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숙연한 마음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한다. 물질문명에 끄달리지 않고 스승의 법을 올곧게 이어가는 담백한 수행자의 멋과 추상같은 스승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청정도량에 소박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산천초목과 뜻이 통했던 두 성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암자는 두두 물물 부처 아닌 것이 없다. 천명의 성인을 기다리며 암자를 지키고 선,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천년의 세월을 기워 입고 묵언에 든 삼층 석탑, 선정에 든 도통바위가 암자를 굽어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