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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종지宗旨 직지사 천불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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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석가세존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올리자 가섭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소림굴에서 팔을 잘라 법을 구한 혜가에게 달마는 불편한 마음을 가져 오라고 했다.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참된 마음을 바로 깨치고 밝히면 그 마음이 그대로 부처이다.”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 선종의 초조 달마선사의 가르침이다. 즉 밖에서 구하지 않고 생각을 일으키는 그 곳, 자기 마음속의 부처를 찾아 갈고 닦으라는 선종의 종지를 유일하게 사명寺名에 새겨 넣은 직지사는 선종의 종풍이 살아 숨 쉬는 사찰이다.

서기 418년 신라 눌지왕 2년에 아도 화상이 창건한 직지사는 신라불교의 선구자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능여 대사의 활약으로 고려 왕실의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대찰로 성장했다. 조선시대 정종의 어태를 봉안함으로 숭유억불의 암울한 시대에도 왕실의 보호를 받아 사세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의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 8대 가람의 위치에 놓였으나 사명대사의 출가 본사라는 이유로 전각 40여동을 불태우는 혹독한 보복을 당하기도 했다. 임진년의 병화로 사세가 크게 위축되었던 직지사는 1958년 녹원 스님이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나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니 문자를 세우지 않느니라.” 선종의 종지를 이어받은 직지사는 천불선원을 통해 천년의 선맥을 이어가고 있다. 쓰라린 역사와 혼란 속에서도 조정에서 고선종대가람古禪宗大伽藍이란 첩문을 내려 비호함으로 많은 선지식이 배출되었다. 1913년 제산스님이 천불선원 조실로 머물면서 눈 밝은 수좌 30여명이 모여 들어 선풍을 드날리기 시작하였다. 벽안당에 앉아 장좌불와하며 17년 동안 산문 밖 출입을 일체하지 않았던 스님은 후학을 제접하며 수행에만 매진하였다. 퇴운, 탄옹, 경봉, 만봉, 남전, 전강, 고암, 동산 스님 등이 제산 스님의 지도를 받았다. 특히. 무자 화두를 받아 정진에 몰입했던 전강 스님은 머리에 열기가 오르고, 피가 입과 코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상기병을 얻어 핏기 하나 없는 몸으로도 죽음을 각오하고 용맹정진한 끝에 초견성 하였다.

바람이 걸어오는 소리, 개울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도피안교를 건너자 바람도 개울도 소리를 낮춘다. 은은한 숲과 시원한 초록 물결위에 숨은 듯 호젓하게 내려앉은 천불선원 이 청량한 기운을 전한다. 정적을 깨운 죽비 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 세간의 번뇌까지 털어낸다. 안양루 계단을 올라 선원으로 들어서자 파란 잔디의 초록 뜰이 엷은 미소로 반긴다.
선원장 황노 스님이 동상당에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천불선원은 청규를 철저하게 준수하며 일체의 시시비비에 끄달리지 않고 대중화합이 잘되는 가장 모범적인 선원임을 강조하신다. 자유 정진 없이 시간표대로 철두철미하게 수행하며 하루 10시간 정진을 기본으로 하지만 선방은 24시간 정진 분위기이다. 새벽 1~2시까지 초심을 이어가며 결가부좌를 풀지 않는 수좌가 대다수이다. 이번 하안거에는 30년 이상 선방만 다닌 최고 구참 수좌 4명이 동참해 구도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매년 하안거에는 20~22명, 동안거는 22명이 안거에 든다. 천불선원의 청규는 단호하고 엄격하다. 산문 밖 출입은 일체 허용되지 않으며 신문, 잡지, 핸드폰 사용도 불허다. 오체와 육류는 물론 라면도 금지 식품이며 오직 자신의 불성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화두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소임에 따른 부산한 움직임에도 적막 속에 싸늘한 고요가 흐른다. 움직임은 있으나 일체의 소리는 끊어진 우주인의 유영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오후 4시, 결가부좌를 푼 죽비소리에도 좌복 위에 올라앉은 화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수행자의 형형한 눈빛이 시간의 티끌을 말끔히 걷어낸 극락전 선방은 큰 의심덩어리만 가득 하다. 소임을 서둘러 마친 수좌는 저녁공양도 미룬 채, 식지 않은 좌복의 온기를 다시 데운다.
마음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늘 남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버리고 비우려고 하지만, 마음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늘 모자람을 걱정하며 더 많이 채우기 위해 목숨을 건다. 선이란 남을 알고 남을 이기자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이기기 위한 고독한 싸움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우려고 하는가? 비우고, 채우려는 생각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