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지척인 양평은 고려 말, 태고보우 선사가 태어난 고향으로, 상원사는 보우 선사가 12대원을 세우고 정진하여 30세(1330년)에 초견성한 도량이다. 또한 용문산 부도암에서 오도를 체험한 무학 대사가 왕사를 사양하고 머물렀던 곳으로, 후에 효령대군이 원찰로 삼고 수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세조가 삼촌의 원찰인 상원사에 거동하자 상서로운 빛과 음악이 울리며 법당 위로 관세음보살이 화현한 당시의 모습을 화공이 그림으로 남겼다. 그 그림을 토대로 당대의 학자 최항이 기록한 관음현상기가 현재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용문산 중턱에 위치한 상원사는 아침 햇살의 정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서출동류수와 좌청룡 우백호의 입지를 모두 갖춘 뛰어난 도량이다. 용문산은 맑은 기운이 충만한 옥산으로 수행자에겐 더없이 좋은 95점짜리 선원이라고 소개하시는 의정 스님의 안내를 받아 용문선원 계단을 오른다. 용문선원은 선의 정통을 세웠던 보우선사의 선풍과 선지가 흐르는 선원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전소되어 명맥이 끊어졌다. 사제와 함께 복원에 힘쓴 의정스님이 2001년 하안거에 선원을 다시 열어 보우선사의 선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계종 선원청규 편찬위원장을 지낸 선원장 의정 스님은 지난해 11월, 1700년 한국불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원청규를 탄생시켰다. 청규는 선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수행규칙 및 규범이다. 제방의 올곧은 수좌 15명이 6년여의 장고와 각고 끝에 결실을 맺은 선원청규는 한국불교의 구체적인 수행지침을 제시함으로 제2의 계율이라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온고지신에 바탕을 둔 미래지향적인 생각으로 우리의 정서에 부합한 선원청규는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간화선 수행에 있어서 첫째 선지식, 둘째 도반, 셋째 환경이 중요하다. 특히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 선결이며, 완성 그 자체이다”라는 스님은 21세기는 간화선이 인류문명을 구제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하신다. “20세기가 과학문명의 르네상스 시대라면 21세기는 정신문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것이며, 그 정신은 선 수행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 하신다. “그러므로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예술, 과학 등 전 분야에서 선의 실용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고 하신다. 앞으로 10년 ~ 20년 이내에 인류문명의 엄청난 변화가 올 것임을 예견하시는 의정스님에게서 보우선사의 선풍을 계승하려는 진한 고뇌가 전해진다.
의정 스님이 선원장인 용문선원의 가풍은 제방선원보다 더욱 철저하고 엄격하다. 스님이 지도하는 용문선원은 3년 전부터 선원청규를 우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하안거에는 13명의 납자가 하루 10시간을 기본으로 정진중이며 자유정진은 없다. 산문출입의 통제는 물론 핸드폰을 비롯하여 음향기기와 경전을 포함한 독서까지 일체 금지한다. 차담은 점심공양 후 한 번이 원칙이며 대중화합을 저해하는 일체의 행동과 잡담은 허락되지 않는다. 논과 밭도 선원이라는 스님은 특히 동선과 좌선을 겸하는 울력을 중시한다. “매일 1시간씩 실시하는 울력 때문에 초기엔 입방을 망설이는 납자가 많았지만 현재는 뜻을 같이 하는 눈 푸른 납자들만 모여들어 아주 좋은 선원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신다.
신묘년 하안거, 참 “나”를 찾기 위한 석 달의 여정에서 보름을 남겨두고 있다. 대자유를 증득하기 위해 산문에 몸을 가두고, 화두 속에 자신을 감춰 선승의 그림자만 쫓아온 시간이다. 눈 푸른 납자들이 반석같이 앉아 선정에 든 좌복 위로 수행의 향기가 짙게 깔린다.
종각위에 올라앉은 구름을 헤치고 감춰진 천년의 화려한 역사가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민족의 아픈 역사와 도량의 험난한 고난을 함께한 범종이다. 상원사 스님들의 각고의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104년의 외출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온지 1년이 조금 지났다. 깊은 상처와 아픔을 털고 현존하는 최고의 범종으로 인정받아 다시금 국보의 자리에 오를 수 있길 기대하며 도량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