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켜온 대승사는 경북 문경 사불산 자락에 위치한 나옹선사의 출가 사찰이다. 1900년 경허 스님이 머물면서 선풍을 일으키고, 1929년 쌍련선원이 개설되면서 참선도량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2년 후 용성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성철, 청담, 우봉, 서암, 자운, 금오, 향곡 스님 등 수많은 선승들이 모여 들어 가부좌를 틀었다.
특히, 성철 스님은 3년 동안 눕지 않은 장좌불와 수행을 하였으며, 청담 스님과 함께 봉암사 결사의 기틀을 마련하여 불교정화의 씨앗이 발아된 사찰이다. 이처럼 기라성 같은 선승들이 치열한 수행으로 선불교가 생생하게 약동했던 현장이었으나, 전란과 화재를 겪으면서 오랫동안 선원 문이 닫혀 있었다.
역사의 상처로 맥이 끊어진 쌍련선원을 1995년 월산스님이 대승선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선객들을 지도하면서 서슬 퍼런 가풍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대승선원은 21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정진하는 3.7 용맹정진으로도 유명하다.
“21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는 수행이 어떻게 가능한지요?” “자신이 원하고 좋아서 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누군가 시켜서 한다면 칼부림이 나겠지만 스스로 우러나오는 절실한 마음이 크기 때문이지요. 잠을 자면서 수행하는 스님들 보다 행동도 더 민첩하고 얼굴에 생기가 돌아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하시는 선원장 철산 스님은 온화한 미소와 맑은 눈빛에서 흐르는 부드러움과 100일 용맹정진을 두번 치른 수행자의 엄격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1997년부터 대승선원 전통이된 3.7 용맹정진은 전국에서 모여든 40여명의 선객이 춘추로 결제에 들었으나 당분간은 불사 관계로 봄철에만 이루어지고 있다.
대승선원은 H자 형태의 구조로 제방선원에서 볼수 없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단청 없는 전각에 오랜 세월이 눌러 앉아 담백한 아름다움이 우러나온다. 선방 문을 열자 적묵에 싸인 고요가 밀려 난다. 비우고 또 비워낸 텅빈 공간, 비처럼 쏟아지는 번뇌를 뚫고 석달의 하안거가 끝난 선방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절멸된 공간, 벽에 걸린 죽비에 칼날 같은 선기가 서려있다.
대승사 낡은 좌복에 생사를 던진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들려주신 깨달음의 일화가 떠오른다. “쌀 다섯 되를 한꺼번에 밥을 지어 김치와 수저만 구석에 놓고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암자의 문을 잠궜다. 이불도 베게도 없애버리고 세수도 청소도 하지 않았다. 입은 옷 그대로 좌복 위에서 얼마나 지났는지 윤필암에서 놓고 간 순두부가 까맣게 곰팡이가 피었더라.” 절구통 수좌, 법전스님이 남긴 수행의 향기가 좌복 위로 솟아오르고 있다. 올 하안거를 난 27명의 선객은 좌복 위에 어떤 향기를 남기고 산문을 나섰을까?
대승사는 5년전부터 불자들을 위한 재가자 선방이 운영되고 있다. 밤 10시에 취침해 새벽 3시에 입선하는 일과와 용맹정진까지 모든 일정이 스님들과 다름이 없다. 일반인들은 템플스테이를 통하여 깊은 산중 고즈넉한 자연에 안겨 참선을 통한 정신적 풍요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대승사는 수행자를 품은 깊은 산중의 사찰이다. 신도가 많지 않은 사찰이기에 철산 스님은 자립경제 모델을 구축하여 수행자를 뒷바라지 한다. 도자기를 굽고, 차와 죽염, 경옥고를 만들어 대중에 보시한다. 또한 인근 야산에 장뇌삼, 도라지, 버섯 등을 재배하여 소외된 이웃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세상에 힘을 보탠다.
울창한 송림과 청량한 바람 사이로 서산의 연한 햇살이 빗살을 치기 시작한다. 천년세월을 짊어진 극락전 문살에 세월의 빈틈을 헤집은 맑은 미소가 그려진다. 가난은 수행자의 아름다운 뒷모습임을 강조하신 월산 스님의 향기와 사찰을 찾는 나그네에게 큰사발에 진하게 탄 경옥고부터 건네는 손상좌 철산 스님의 자비가 노을 타고 세상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