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운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의 서운암은 통도사의 산내 암자이다. 고려 1346년(충목왕2년)에 충현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859년(철종10년) 남봉 대사가 중건하였다. 근래에 회주 성파스님이 중수하여 전통된장을 담그는 장독대로 유명한 암자이다.
계절이 오고간 수많은 세월을 담은 장독대를 지나 암자의 한 녘으로 주지 스님이 안내하신다. 자연을 담은 하늘 빛 염색 조각들이 고운 숨을 고르고 있는 작업장에서 필자를 맞아 주시는 회주 성파스님의 환한 미소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잊혀져가는 전통문화를 깨워 세상에 내놓는 일에 전력을 다하시는 성파스님은 “민족의 숙원인 통일 문제에 불교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에 대한 깊은 고뇌 끝에 불교의 힘을 빌려 국난을 타개하고자 했던 고려대장경의 호국정신을 되살려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도자대장경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도자대장경은 남북통일을 향한 불자들의 간절한 염원과 10여년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한 성파 스님의 노력으로 완성되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양면을 도자에 구워낸 16만장의 거대한 도자대장경은 천연 옻칠을 한 서운암 장경각에 봉안하여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서운암에 수천 개의 장독이 놓이게 된 계기도, 암자 마당에 쪽빛 천 조각이 나부끼게 된 연유 역시 호국불교의 기반위에 있다. 스님은 “아파트 문화의 대중화로 장독이 버려지고 왜간장이 식탁을 점령하게 되자, 음식문화의 뿌리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임을 인식하고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 대응책으로 천년전통을 이어온 통도사 된장을 개발해 전국에 보급하게 되었고 왜간장이 물러났다.”고 하신다. 또한 감지위에 금분으로 경전을 쓰는 금니사경에 뜻을 두신 스님은, 고려시대 이후 명맥이 끊어져 고고학자들의 기억에도 사라진 신비의 종이, 감지를 재현해 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각고의 노력으로 전통한지에 쪽물을 들여 천년을 견딘다는 감지의 재발견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또 하나의 불교 유산이다.
스님은 서운암에 무위선원을 열어 선농일치의 수행을 실천하고 계신다. 선원을 개원한지 얼마나 되었는지요? 하는 질문에 “제법 되었지, 하시며 세월을 계산하지 않아 정확히는 모른다.”는 답을 주신다. 해가 돋아 날이 밝으면 낮이고, 해가 지면 밤 인줄만 알면 되지, 세월 계산해서 뭘 하느냐고. 좌복 위에 앉든, 밭고랑에 앉든 일과 수행을 따로 두지 않고,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스님의 말씀이 가슴속에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화두를 놓으면 중생이요, 화두를 잡으면 열반의 길이라고 했다.
겨울 앞에서 벌거벗은 나목들이 시절의 흐름에 따라 성장을 멈추고 있지만,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흐름은 멈춤이 없다. 대숲을 스치는 청량한 바람소리까지 화두에 동여 메고 구도심에 채찍을 가하며 20명의 납자가 석 달의 여정에 든 무위선원은 마당까지 선기로 가득하다.
전통 문화의 원류를 쫓아서 미래의 문화유산을 창조하는 고되고 험난한 길, 말 많고 탈 많았을 세월의 빈틈을 헤집고 우리의 향기에 흠뻑 젖은 전통문화의 보고 서운암엔 일주문도 화려한 법당도 없다. 오직, 선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도의 열기와 우리 것을 지키려는 전통향이 안과 밖을 가득 메우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단아하고 소박한 전각이 자연과 하나 되어 잘 어울린 서운암이다. 그것은 우리의 향기가 흠뻑 젖은 암자에 차곡차곡 담았던 우리의 마음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리라. 산허리를 감아 돌아 온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장독위에 올라앉은 따사로운 햇살의 겨울 미소가 아름다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