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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의 종가 덕숭총림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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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가지마다 품고 있던 자신의 색깔을 터트리며 덕숭산 계곡을 깨우던 꽃나무들이 초록 옷을 껴입기 시작한다. 단청 없는 맨살로 칠백년을 견뎌온 백제의 곡선은 덕숭 낭자와 수덕 각시를 찾아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다. 백제의 숨결과 호흡하며 벽초 스님의 손길이 스며든 1080개의 돌계단을 따라 정혜사 능인선원으로 오른다.

충남 예산에 자리한 덕숭총림 수덕사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백제 고찰로 편안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백제 말 숭제 법사가 창건하고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중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창건 이후 백제의 고승 혜현 스님이 법화경 강론을 폈으며 고려 충렬왕(1308년)때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수덕사는 한국 선불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각별한 도량이다. 조선후기 꺼져가던 선의 불씨를 지피고 전국 사찰에 선방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경허 스님의 선맥이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근대 선의 중흥조, 경허 스님의 법맥을 이은 만공 스님은 삼수갑산에서 입적한 스승의 유품을 모시고 돌아와, 40여 년간 주석하며 선의 등불을 다시 밝힌 곳이다. 스승의 불씨를 살려 선풍을 크게 일으킨 만공 스님이 조실로 주석하자 납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요사채와 선원 마당에서도 수행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근대 100여 년 동안 한국불교를 움직이는 수많은 선지식과 2,000여명의 납자들이 거쳐 간 선불교의 종가이다.

능인선원은 1904년 경허 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은 만공 스님이 이듬해 금선대라는 초가를 지어 보림에 들자, 납자들이 가르침을 청하여 개당보설을 하게 된 것이 시초이다. 1910년 정혜사에 선우공제회를 조직하여 동안거부터 납자들을 제접하고 능인선원의 문을 열었다. 1932년에는 사재 5천원의 거액을 보시하여 선원을 중수하였으며, 금봉, 고봉, 전강,금오, 혜암, 벽초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승들을 배출했다. 선원 방함록에는 마호(풀을 끊임) 소임으로 동안거에 든 성철 스님(31세 때)의 기록도 남아있다.

거대한 선사의 자취가 짙게 배인 능인선원은 방장 설정 스님을 비롯하여 26명의 스님이 성성히 깨어있는 맑은 정신으로 하루 8시간 철저하게 정진한다. 동안거에는 일주일간 용맹정진을 실시하며, 자급자족이 생활화된 선원이기에 밭을 갈아 농사를 짓는 울력도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이다. 방장스님부터 정진과 울력에 솔선수범하는 능인선원은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청규정신과 선농일치의 수행가풍을 이어가고 있다.

“거지들 거처를 떠돌던 스님이 공양 해결을 위해 정혜사로 와 만공 스님께 ‘무’자 화두를 받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정진하던 스님은 화장실에서 깨침을 얻어 제방의 조실로 후학을 제접했다.” 정혜사에서 발심하여 확철대오한 숨은 도인, 박성월 스님의 일화를 들려주신 선원장 금산 스님은 “참선은 종교를 초월하는 자기 수행이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도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모든 것이 불법 속에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된다” 고 하신다. 혜암 스님의 유발상좌로 시작하였던 참선공부가 너무 좋아 막내상좌가 되었다는 스님은 눕지 않고 생활하는 장좌불와 수행을 18년째 이어가고 계신다.

능인선원은 기라성 같은 선승들이 목숨을 걸고 불꽃 튀게 진리를 겨루던 선불장이다.
문고리를 당기자 삼매에 들었던 금빛 햇살이 살며시 일어난다. 번뇌를 털어낸 만공 스님의 죽비와 스님의 체취가 훈습된 덕숭청규가 살아있는 화두로 미몽을 깨운다. 나를 찾는 납자들의 형형한 눈동자에 자리한 스님의 음성이 침묵을 타고 흐른다. 선방가득 채워진 진리의 법향이 세속에서 묻혀온 욕망을 하나씩 밀어낸다.

만남과 이별,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자네, 나와 이별할 때가 되었네 그려” 만공스님이 거울속의 자신에게 이별을 통보하던 시간까지 달을 굴리던 집, 전월사轉月舍 마당에 발을 딛고 섰다.
절벽에 기댄 한 칸 초옥에서 달을 굴려 허공을 운전하던 스님은 이제 스스로가 허공이 되었다. 비움으로 가득찬 곳, 채움으로 비워낸 텅 빈 공간이다. 하늘 아래 제일 크고 푸른 나무 그늘에 몸을 담그고 마음 한줌 덜어낼 수 있음에 두 손 고이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