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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지 종가 영축총림 보광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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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계율을 지키며 단 하루를 살지언정, 계율을 어기며 백년을 살지는 않겠다.” 왕은 결국 자장의 출가를 허락했다. 모든 진리를 회통(通)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度)는 통도사는 선덕여왕의 부름을 단호히 거절한 자장율사가 창건한 뿌리 깊은 불지종가이다. 왕의 요청으로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는 646년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쌓아 부처님의 진신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고 보름마다 불법을 설하였던 계율종의 근본 도량이기도 하다.

능견난사문(能見難思門 눈으로 볼 수 있으나 머리로 헤아리기는 어렵다), 보광선원 출입문에 걸린 편액에 눈길이 머문다. 보통의 이치로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모를 일이라는 뜻이다. 보이는 것 너머의 이치를 깨달아 법열을 만끽하려는 납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보광선원의 문고리를 당긴다.
북적이는 절 마당과 달리 흙돌담 하나가 갈라놓은 선원은 절집안의 또 다른 암자에 들어선 느낌이다. 파아란 잔디가 잔물결을 이루는 빈 뜰에 푸른 정적이 깔린 진리의 공간이다.

1900년, 경허 스님이 통도사로 와 선풍을 떨치게 되는데 그 무렵 선원이 처음 개설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그 후 1911년에 구하 스님이 선원을 복원하고 화엄경의 보광명지에서 이름을 딴 보광선원을 개원했다. 1926년, 용성 스님을 모신 보광선원은 중흥기를 맞이하였으며, 성해, 구하, 경봉, 전강, 월하 스님이 수선하면서 선지를 드높여 눈 밝은 선지식들이 수없이 거쳐 갔다.

초록에 잠긴 고요를 깨우며 요사채에서 유나 천진 스님이 반겨주신다. 툇마루를 딛고 들어선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벽에 걸린 장삼과 구석에 세워진 간이선반, 방바닥에 놓인 유선 전화기 한 대가 전부다. 총림의 유나스님 거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 흔한 찻상이나 다구 하나 없는 절제된 소박함이 단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소욕지족의 삶이 비워낸 공간에 가득한 수행의 향이 세상의 어떤 향기보다도 진하게 우러나온다.

40년 동안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정진하셨다는 천진 스님은 ‘숟가락 들 힘이 있으면 정진하라’고 호통 치는 성철 스님, ‘이 공부는 계산해서는 안 된다, 금생에 안 되면 내생까지 간다는 각오로 하라’고 격려하는 경봉 스님, 70세가 넘어서도 올곧이 정진을 이어가신 서옹 스님, ‘수행자의 삶은 소박하고 갈등 없어야 한다. 조석 예불 잘 드리고 밥 잘 먹는 것이 중노릇 잘하는 것’ 이라던 향곡. 구산. 월하. 춘성 스님등 손꼽히는 역대 선지식들을 모시고 늘 긴장하며 수행했다고 하신다. 큰스님들의 가풍이 자연스레 몸에 배여 일상까지 깊이 스며든 스님은 이름 그대로 천진무구한 모습을 지니셨다.

법계에 이르는 길에 지름길이란 없다. 하안거 결제를 기다리는 보광선원은 28명의 납자가 하루 10시간씩 정진한다. 논리와 사고를 뛰어넘어 진리를 회통하려는 납자들은 엄격한 청규에 따라 산문출입을 금하고 지혜의 칼을 찾는 소리 없는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수행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밭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유기농법과 같다. 우리 몸은 밭이고 안이비설의는 나무이고 열매다. 참선이나 기도, 염불은 모두 수행의 거름이다. 밭에 나무를 심고 거름을 충분히 주어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데, 나무는 가꾸지 않고 열매만 기다리니 잡초에 묻혀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항상 신. 구. 의를 깨끗이 하고 열심히 수행하면 잡초는 자연히 제거되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라고 하시는 스님은 좋아하는 글귀라며 메모 한 장을 건네주신다.

多言多慮다언다려 轉不相應전불상응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 상응치 못함이요
絶言絶慮절언절려 無處不通무처불통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모든 수행의 근본은 말이 아닌 몸으로 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뜻이다.
매일 새벽 108배로 하루를 열어가는 스님은 한마디 한마디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반조하고 계신다. 마음을 찾아 진리에 이르는 길에 가장 큰 언어는 침묵이라고….

선원 뜰에 피어난 파란생명이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또 하나의 지혜를 열고 싹을 틔운 파란미소에 맑은 향기를 얹어 세상에 내보낸다. 무엇을 담은 것이 아니라, 비운 자만이 가능한 깃털 같은 가벼움이 영축산으로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