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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선불교의 중심 용주사 중앙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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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살아서도 효성이 지극했던 왕, 죽어서도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저승에서도 이어지는 정조의 효심은 오늘날 퇴색해가는 효를 깨우치게 하는 큰 울림으로 용주사는 효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세상으로 전하고 있다.
가지산문의 선맥을 이어온 선종의 뿌리 깊은 도량, 고려 최초의 국사가 남긴 선찰의 자취, 근대 선불교의 법맥이 살아 흐르는 곳, 용주사는 선찰로서도 중요한 사격을 갖추고 선불교의 수행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효와 선이 만나 부처의 향기를 품어 내는 도시속의 산사 용주사 중앙선원으로 발길을 들인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용주사는 신라 말, 가지산문의 2대조였던 염거화상(?~844)이 창건하고, 고려 혜거국사(899~974)가 혜거헌이라는 승방을 두고 선찰의 종풍을 크게 떨친 갈양사 자리에 세워졌다. 정조 대왕(1790)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천하제일 복지라는 갈양사 터에 홍살문과 탑을 세우고 창건한 능사이다. 정조가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어 용주사(龍珠寺)란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정조의 지극한 효심과 불심이 하나로 승화된 효찰 대본산으로 불리고 있다.

중앙선원은 전강스님이 청담, 월산스님 등 종단의 원로 스님들과 협의하여 수도권 내에 선원을 세울 것을 발의하여 1969년 11월 29일 개원했다. 초대 조실로 추대된 전강스님과 사부대중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안거 결제 법요식 및 중앙선원 개원식이 거행 되었다. 현재의 만수리실을 선방으로 사용하였으며, 중앙 선원의 명칭은 수도권에서 중심이 되는 선원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전강스님 입적 후, 소원해졌으나 정대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은 선원은 송담스님의 지도아래 이때부터 산철결제도 시작하였다. 경내에 참배객의 왕래가 빈번해지고 선방이 협소하자 정대스님은 1986년 현재 위치에 신축 불사를 완공하고 선원을 이전하였다.

담장 너머 솔숲은 선원 영역이다. 수행의 꽃을 활짝 피운 선승의 향기와 체취가 뚜렷이 남아 있는 중앙선원이다. 낮은 담장에 굳게 닫힌 출입문이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경계선으로 닥아 온다. 안과 밖, 열림과 닫힘, 그 이상의 경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고행을 감내하며 수행의 문턱을 넘기 위해 숨결조차 죽이는 소리 없는 전쟁터이다.
중앙선원 하안거에 든 17명의 납자들은 매일 아침 전강스님과 송담스님의 육성 녹음 법문을 번갈아 들으며 하루 8시간씩 정진에 임하고 있다. 전강 스님이 입적한지 37년이 흘렀지만 중앙선원 용상방에는 조실 자리에 ‘고전강대종사’ 라고 올려져 있다. 산철결제는 끊임없이 이어지나, 꾸준히 여일하게 화두를 들고 정진하라는 전강 스님의 유훈에 따라 용맹정진은 하지 않는다. 만공스님의 법맥을 이어 받은 전강스님은 지혜제일의 선승으로 일컬어지며 중앙선원을 한국 선불교의 중심으로 이끌어낸 용주사의 정신적 지주이다.

근대 선불교의 중심 사찰인 동시에 효찰 대본산인 용주사는 경내에 효를 몸소 실천하는 서림당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건립한 서림당은 욕실과 화장실이 구비된 1인 1실로 스님들의 노후를 위해 마련된 시설이다. 문중스님들이 노후를 걱정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교구 본사 최초의 복지시설로서, 안거 연수에 따라 매달 30-50만원씩 수행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병원에 입원 시에도 일정 금액을 본사에서 지원하는 등, 효찰 대본산의 명성에 걸맞은 효 실천과 효 문화에 앞장서고 있다.

솔 향을 실은 회색 장삼이 늘어진 노송가지에 매달려 어깨춤을 추고 있다. 선원 처마 끝에서 좌복을 말리느라 분주한 선객들의 모습은 세속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수행자는 세간 사람과 달리 욕망의 무게를 한줌 한줌 덜어내는 삶을 살아간다. 시렁에 걸린 가사 아래, 선방 청소를 맡은 선객의 비질이 예사롭지 않다. 좌복위에서 덜어낸 욕망과 털어 놓은 번뇌를 싹싹 쓸어내는 빗자루 끝에 세속에서 지고 온 나그네의 욕심도 쓸려 나간다.
선객의 비질이 세속의 묵은 때까지 쓸어 가도 해갈되지 않는 갈증과 찌꺼기로 남은 욕심 한 자락은 노송 끝에 걸어 둔다. 배움과 깨달음이 다르듯 오직 자신의 등불을 켜라는 부처의 가르침만 간직하고 선원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