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끊임없이 흘러도 자연은 변함없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다. 천년의 향기를 머금고 아침향을 실어 나르는 청아한 산사, 밤새워 내린 비에 촉촉이 젖은 가을 잎새들이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잔상을 떨구어 내고 있다. 정족산 아래 수 없이 피고 진 역사의 꽃들, 남겨진 기록 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삼랑성의 문고리를 더듬으며 역사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을 울타리 삼아 자리한 전등사는 서기 381(소수림왕11)년 이 땅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현존하는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깊은 사찰로서 창건 당시는 진종사眞宗寺로 불리었다.
전등사로 사명이 바뀐 것은 인기 스님이 충렬 왕비인 정화궁주의 부탁으로 송나라에서 인출해온 대장경을 경내에 모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전등이란 ‘불법의 등불을 이어 전한다’는 의미로 조계선종의 법맥과 종지가 담긴 경덕전등록이 대장경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비운의 정화궁주가 고려의 국운이 몽고의 억압에서 벗어나 불법의 등불처럼 이어지길 기원하는 간절한 염원도 담겨 있었으리라.
전등사는 고려가 강화로 천도를 하면서 크게 중창되었으며,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사세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1912년 일제강점기에는 강화,·개성 등 6개 군소재지의 34개 사찰을 관리하는 조선불교 31본산이었다. 6.25 전쟁으로 인하여 유일한 분단 사찰이 되었으며 현재는 조계사 말사이다.
전등사는 일주문이 아닌 성문으로 출입하는 독특한 사찰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으니, 승과 속의 경계도 따로 두지 않았음일까? 대조루에 걸린 전등사 현판이 아침 이슬을 털며 나그네를 맞이한다. 해송의 향기와 석양의 낭만을 품은 대조루 계단을 오르니 날아오르는 학처럼 산뜻하게 처마선이 올라간 대웅보전이 마주한다.
대웅보전은 1621년(광해군13)에 지은 것으로 내부에 유물로는 석가여래 삼존불과 후불탱화, 1544년 정수사에서 판각된 법화경 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법당 내부의 기둥과 벽 여기저기에 적힌 이름들, 외세의 침략에 목숨 걸고 싸운 선열들이 부처님의 가피로 승리를 기원하며 남긴 흔적이다. 때문에 벽과 기둥은 보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 백년 세월을 겹쳐 입은 닫집과 수미단의 아름다움은 여전한데 이름만 남기고 가버린 선열들의 우국충정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대웅보전 네 귀퉁이에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은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고통과 수치로 굴곡 많은 이생의 한을 되새기던 그녀는 스님들의 목탁 소리에 맞춰 끝없는 정진과 참회로 죄업이 소멸 되었을 것 같다 오늘날 전등사의 유명세를 한 몸에 받으며 어지럽고 혼란스런 세상을 향해 인과응보에 대한 함축된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는 생각이다.
신성한 법당에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낸 도편수, 배신한 여인을 발가벗겨 굳이 연화대에 올려놓은 그의 숨은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대웅전이 완공되는 순간, 이미 사랑도 미움도 모두 놓아 버린 도편수가 세상에 던진 화두이며 무설법문이 아닐는지… 뒤엉킨 인연의 매듭이 풀어진 그들의 악연이 지금은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아름다운 인연으로 재회 했으리라.
역사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역경과 고난을 삭여온 주름 잡힌 세월 속에, 새로운 역사를 품어가는 전등사는 불교의 전통 수행인 예불과 참선, 발우공양, 108배 등으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명상과 효 사상을 익히는 전통문화 체험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지며,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전파하고 있다.
주지 범우 스님은 현재 관광사찰로 존재하고 있는 전등사의 이미지 쇄신과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시다. “불법의 진리를 바탕으로 철저한 신행중심 도량으로 거듭날 때, 사찰 고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천년 고찰의 화려한 가람만으로는 관광객의 구경거리가 될 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과 전법의 공간으로 보존되기 어렵다. 이점은 모든 사찰들이 지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는 스님의 말씀은 가람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속에 짓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삼랑성에 아도화상이 터를 닦은 지 1,700여년, 단군신화를 근원으로 하는 고즈넉한 성안에서 파란만장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함께했던 전등사는 국운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감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고려가 경내에 가궐을 세웠던 대몽항쟁의 도량으로, 정족산 사고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왕실 원찰로서, 외세의 침입을 막아낸 호국도량으로, 국난을 극복해온 고난의 역사와 천년 세월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