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무르익은 가을이 터질 것만 같은 천년 고찰의 언저리, 산을 휘감고 도는 청정한 바람과 투명한 햇빛이 향을 실어 나르는 영남의 알프스 가지산 산문을 들어선다. 화려한 계절의 요란함 대신 차분히 자리한 고목들이 단아한 자태로 길손을 반긴다. 오가는 산새
들과 허공을 떠돌던 흰 구름의 하얀 미소가 머문 석남사에 일상의 짐을 내려놓는다.
석남사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문을 개설한 가지 산문의 개창자이자 조계종의 종조, 도의 국사가 호국기도 도량으로 신라 헌덕왕 16년(824)에 창건한 선찰이라고 전해온다.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석남사는 영남 제일의 사찰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번성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며 1,200여년의 장구한 세월, 도의 국사의 선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 옛날 번성했던 모습을 다시 갖추고 1백여 명이 넘는 스님들이 상주하면서 엄격한 계율을 준수하는 석남사는 1999년 조계종 비구니 종립특별선원宗立特別禪院으로 지정된, 국내 최대 비구니수행도량이다.
석남사의 선원은 세 곳의 수행공간으로 이루어져있다. 운수납자들이 정진하는 정수선원과 결사도량인 금당선원, 공부가 순숙한 납자들이 용맹정진하는 심검당 선원으로 나누어져 있어 각자의 근기에 따라 수행할 수 있도록 선원을 운영하고 있다.
석남사에 선원이 개설된 것은 1957년 주지로 부임한 인홍 스님이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람을 중수하고 정수선원을 신축하여 비구니 선수행 도량을 개원하면서부터이다. 1963년에는 도량의 제일 높은 위치에‘지혜의 샘을 찾는다’는 의미의 심검당을 신축하였다. 수차례 3년 결사를 시행하며, 비구니 수행처로선풍을 드날리자 수많은 운수납자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1995년 도문 스님이 금당선원을 신축, 개원하여 눈 푸른 납자를 배출하며 결사를 이어오고 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금당선원은 16명의 납자가 1년 동안 동, 하안거를 따로 두지 않고 산문 밖 출입을 금지한 채 결사에 들어 수행중이다. 정수선원에는 안거철에 30명의 납자가 방부를 들이며, 심검당은 성철 스님의 유일한 혈육 불필 스님이 정진 중이다.
특히 1년 결사로 하루 12시간씩 가행정진하는 금당선원의 입방조건은 까다롭다. 법랍 10년 이상으로 선방 경력 3년을 넘어야 하며‘공부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받아야 좌복을 허락한다. 정수선원의 수행가풍 역시 서릿발 같은 기상이 넘쳐 흐르는 곳으로 하안거에는 가행정진을, 동안거에는 일주일 동안 잠을 일절 자지 않는 용맹정진으로 깨달음의 꽃을 피우고 있다.
파아란 여백의 아늑함을 안고 자연과 닿아 있어 정갈한 법열이 흐르는 금당선원의 뜰은 맑고도 고요하다. 천년의 선기로 가득 찬 선방은 결사에 든 납자들의 초롱초롱 깨어 있는 눈망울이 보드가야의 새벽별 만큼이나 빛난다. 스스로를 산과 구름 속에 가두고 마음속에 쌓여진 또 다른 마음을 찾으려 화두를 불태우는 수행의 향기에 가을바람 따라 떠다니던 나의 마음도 조용히 내려앉는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성철 스님은 절 앞 연못으로 인홍 스님을 불러내 갑자기 물속으로 밀어넣었다. 연못에서 나온 인홍 스님은 젖은 옷 그대로 용맹정진에 들어가 흠뻑 젖은 누비옷이 다 마르도록 좌선을 풀지 않았다”고 한다. 이토록 빈틈없는 수행정진과 청빈을 추
구했던 인홍 스님은 한국 비구니계의 횃불 같은 존재이다. 목숨 걸고 출가의 길을 걸으며, 300여 명의 은제자와 수천 명의 후학을 길러내고 숭고한 출가정신과 수행전통을 바로 세웠다. 가지산 호랑이로 불리면서 이理와 사事에 두루 능했던 스님은 허물어진 가람을 일으키고 법맥의 뿌리를 내려 종립특별선원으로 위상을 확립한 비구니 역사의 산 증인이며 주역이었다.
‘대중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백장청규를 엄수해야 한다’는 석남사의 엄격한 가풍은 새벽부터 시작된다. 모든 대중이 참석해야 하는 새벽예불과 108대참회, 아침마다 가사장삼을 수한 스님들이 죽비에 맞춰 게송을 외우고 발우를 펴는 법공양
은 청규가 성성히 살아 있는 현장이다. 노스님을 비롯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일을 담하고, 일년씩 돌아가며 책임을 맡는 종무소임과 대중공의에 의해 소임을 정하고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것 또한, 인홍 스님이 세운 가풍으로 지금까지 지켜지는 석남사의 불문율이기도 하다.
천년의 품격을 간직한 산사는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절집을 찾는 길손의 발자국소리마저 곱게 물들였다. 심장처럼 뛰고 있는 붉은 단풍이 지나가는 바람 한자락을 불러 세우고 무정설법을 전한다. 세상의 이익에 물들지 않고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아 천년의 바람을 이겨낸 석남사의 종소리가 허공 가득한 부처의 미소로 불음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