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암은 속리산 법주사의 산내 암자로서 신라 성덕왕19년(720) 의상대사의 제자 진정선사가 창건한 1,300년 역사의 고찰이다. 절 옆 큰 바위틈에서 약수가 솟아나와 복천암으로 불리게 되었다. 화두가 새겨진 다리 이름이 암시하듯, 암자 자체가 선원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선승들이 많이 배출된 도량이다. 조선시대 신미, 수미, 학열 스님이 거쳐 가면서 선지와 불법을 드높였으며, 1882년에는 경허 스님이 머물기도 했다.
1913년 법주사 선방으로 개원하게 된 복천선원은 1922년 동산 스님이 하안거를 지냈으며, 1934년 전강스님이 조실을 맡아 납자를 제접하면서 활구참선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1943년 청담스님과 함께 하안거에 들었던 성철 스님은 \"내가 중 된 이후로 공양주 한 번 안 했는데, 한 번 해봐야겠어\"하며 자청하여 공양주를 한 곳이다. 그러자 금포스님은 “조실 노릇은 하여도 공양주는 해보지 못했다”하며 그 다음에 살림을 맡았다. 당시 먹을 것이 없어 미수가루와 생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정진하던 도량이기도 하다. 특히, 청담스님은 독립운동 주모자로 지목되어 상주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과 이질로 큰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복천선원은 근현대에 선풍을 휘날린 효봉, 금오, 혜암, 고봉, 금봉 스님등 명안종사들이 거처 가며 명성을 더해 호서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이 붙었다. 이후 한국전쟁과 정화의 격동 속에서 문을 닫았으나, 1967년 수좌양성에 뜻을 둔, 금오스님이 법주사에 선원 건립을 예정하고 그 공백 기간 동안 복천선원을 재개원하게 되어 침묵 속에서 깨어났다.
“나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라 만날 여기 있어요.” 유선으로 흐르던 무거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환한 미소의 선원장 월성 스님이 맞아주신다. “사회공부는 지식을 담는 것이지만, 선은 버리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수없이 익혀서 복사된 그 업을 제거하는 공부가 기억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 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샘치고 ‘나’라는 생각을 버리고 공부해야만 참 나를 찾을 수 있다.” 결국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아야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월성스님은 “태백산 동암에서 탄성 스님을 따라 왔다가 하루만 묵어가려고 했는데, 주지가 밤새 인계서를 써 놓고 떠나 버려 어쩔 수 없이 살게 되었다” 고 하신다. 팔순의 스님은 현재도 10여명의 납자를 제접하면서 후학들과 함께 정진하며 명안종사들을 키워내 수좌계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복천암은 그동안 학계에서 종종 제기 되어온 신미 대사 한글 창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월성스님은 “복천암에 거주하던 신미 대사가 세종의 부름으로 한양을 오가며 한글 창제를 주도적으로 이끈 여섯 가지 정황을 문헌을 근거로 들었다. 1.세종대왕이 신미대사에게 혜각존자라는 법호를 내리고 금동 삼존불을 시주한 것은 한글창제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2.세조가 즉위 후 복천암에 직접 행차한 것은 한글 창제에 함께 참여했던 신미 대사를 친견하기 위함이다. 3. 세종이 세상을 뜨자마자 집현전학자들이 한글을 비난하고 업신여기며 크게 반발한 것은 그들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4.신미대사의 속가 영산김씨 족보에 집현전 학사로 언급되어 있다. 5.한글의 출처가 범어이며 당시 범어를 아는 분은 신미스님 밖에 없었다. 6.한글 창제 후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책이 유교가 아닌 불교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불교에 대한 깊은 식견이 필요하다는 점과 숭유억불 시대에 논어와 맹자 같은 유교 경전을 두고 굳이 불교경전을 번역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일타스님이 중국의 고서점에서 구하였던 것으로 알려진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는 정통 3년(세종20년 1438)에 발행된 불경언해이다. 이는 한글공포 8년 전에 이미 한글 경전이 간행되었음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이것 역시 신미대사가 한글창제를 주도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말없이 피고 진 한글의 고향, 세월 속에 빛바랜 역사의 진실은 어디에 묻혔을까? 기록된 사실과 감춰진 역사까지 낱낱이 지켜보았을 우람한 주목은 진실을 품은 채, 침묵만으로 암자를 지키고 섰다. 신미 대사와 한글, 잘려나간 진실이기에 더 그리워지는 법일까. 미련이 알알이 모여 차마 떨어지지 못한 마지막 잎새처럼, 나그네의 발걸음도 쉬 돌아서지 않는다. 빈 뜰에 묵묵히 선 주목과 선방을 뒤 돌아 본다. 세월의 뒤안길에 숨어 암자를 겹겹으로 둘러싼 주름진 역사의 소리가 달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