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원암 선원에는 철마다 깨달음을 서원한 23~26명의 비구니 납자가 수선 안거에 들고 있다. 오전3시 죽비 예불로 시작되는 선원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치열하다. 하루 12시간 정진과 가행정진, 납월 8일부터 일주일은 용맹정진으로, 번뇌를 끊어 물처럼 맑고 투명한 본성을 찾기 위해 무지의 구름을 뚫고 있다.
방선 틈틈이 포행과 산행을 하고, 결제 · 반결제 · 해제시 동화사 금당선원으로 내려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상당법문을 들으며 공부를 점검한다. 동장군의 기세가 맹위를 떨치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맹정진에 든, 내원암선원의 겨울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내원암 만큼은 오직 수행만 하는 도량으로 만들겠다”는 원력으로 암자를 중건한 장일 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비구니 선승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초기에는 철조망을 치고 절 문을 걸어 잠근 채 암자에 길도 내지 않았다. 결제 철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불공은 물론, 49재도 지내주지 않았으며, 공양도 양진암까지 내려가서 해결했다. 권속보다는 언제나 수행자가 우선이었고,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도 큰방 대중을 위해선 물불을 안 가렸다. 양식을 동화사나 갓바위에서 얻어다 먹으면서도 납자들이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신도의 출입을 전면 금지 시킨 스님은 외호의 어려움이 심화되자 스스로 탁발도 다녔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며, 가난하다고 하여 정진을 못하는 것은 수행자가 아니다. 간장, 된장과 먹을 양식이 있으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냐?”고 하며 내원암을 청정 수행도량으로 가꾸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수행자라고 하여 참선만 해야 된다고 주장하진 않았다. \"화두를 잡고 순일하게 공부가 잘되면 재미있고 좋지만, 마음처럼 안 될 때는 자신에게 화도 나고 잡다한 생각이 일어날 때가 많을 것이다. 그 때는 기도를 해라. 수행을 하면서 자신을 갈무리 할 수 있어야 하고, 다겁의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고 수행의 방편으로 기도를 권유하기도 하였다.
내원암 선원은 장일 스님의 유지를 받들고, 수행의 힘을 얻기 위해, 해제 시에 자비도량참법 기도로 안거를 마무리 한다. 결제에 들 때는 공부에 대한 다짐과 각오가 충전되어 있으나, 해제 때는 계획만큼 공부가 진전 되지 않을 경우, 마음이 흐트러지고 나태해지기 때문에 다음 철을 약속하고 기약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다.
“너희들 중노릇 안 해도 석가여래 대가 끊어지지 않으니, 그렇게 하려면 중노릇 그만 두어라”는 호통으로 채찍을 놓지 않으신 엄격함과 동시에 어머니 같은 포용력으로 감싸고 품어 주셨던 자비의 향기가 가슴속에 푸르고 깊게 남아 노스님의 향수로 살아간다는 도감 현주 스님은 “무언의 교육으로 일깨워주신 노스님의 배품과 철저한 비움의 사상이 지금껏 수행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재가 불자들도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여일하게 참선을 한다면 언젠가는 한결 같은 마음이 모아 질것”이라고 하는 손상좌 현주스님의 해맑은 미소에서 장일스님의 향기가 배여난다.
현란한 단청이나 거창한 규모보다는 소박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의 들꽃향이 은은히 피어나는 도량이다. 선원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도 편안함이 묻어나는 절집, 천년을 이어온 수행의 숨결이 소리까지 흡수하고 있는가 보다. 햇살의 손길을 따라 꽃이 피어나듯, 내 안의 나를 찾기 위해 화두와 씨름하는 내원암 선원의 뜨거운 법열이 수행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고요를 덮은 저녁 노을 속에 설법전 처마선에 내려 앉은 미륵보살의 너그러운 얼굴이 오늘 하루도 미소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