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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불장選佛場, 남국선원 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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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저는 모르겠습니다. 3년이 문제가 아니고 제가 지니고 들어온 목표를 성취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취하면 3년 전이라도 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못 나갑니다.”창살 없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펄펄 끓는 용광로처럼 불타오르는 눈 푸른
납자의 비장한 결심에‘입방 3년이 되면 방을 나와야한다’는 주지 스님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깨닫지 못하면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납자들의 굳은 의지가 하늘을 뒤덮어 서슬 퍼런 선기로 가득한 한국의 선불장, 그 뜨거운 수행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남국선원은 혜국 스님이 1977년 현 대웅전 자리에 토굴형식의 선원을 지어 고향 제주에 첫 선문을 열었다, 1996년 자리를 옮겨 개원한 남국선원은 대중선원과 구참 납자들이 폐문 정진하는 무문관이 공존하고 있다. 1층은 방과 화장실, 포
행을 위해 작은 마당을 둔 5개의 무문관이 자리하고, 2층에는 대중선방을 중앙에 두고 좌, 우로 2개의 무문관이 외호하고 있다. 100여명의 납자가 거쳐 간 무문관에는 현재, 7년째 문을 걸어 잠근 채, 정진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을 비롯한 7명의 납자들은 잠기지 않은
빗장을 풀고 문 없는 문을 열기 위해 오로지 화두 타파에 목숨을 걸고 있다.
세상의 모든 시비를 잠재우고 대자유의 진리를 찾아 용맹 정진하는 무문관에 들려면 까다로운 입방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법랍 20년 이상의 정진력을 검증받은 구참 납자로서 남국선원 입승 소임을 보아야 하고, 한 철 이상 무문관 공양 시봉 후에야 입방 자격이
주어진다. 문이 열리는 날은 1년에 단 한번, 그러나 새벽별을 보기 전에는 나오려 하지 않고, 방부를 들이려는 납자들은 줄을 이어, 이미 3년간 방부 예약이 밀린 상태로 현재는 아예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무문관은 외부 인연과 엄격히 차단되어 집중적으로 수행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한 모든 것이 자기 주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중선방과 똑같은 시간을 정진해도 거기서 얻는 힘은 완전히 다르다”고 하시는 주지 성묵 스님은 무문관 수행을
직접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작은 공양구로 들어가는 하루 한 끼의 공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성 가득한 공양보다 더 큰 보약은 없다”는 스님은 선원 외호에 있어서 수행자의 건강이 제일 우선임을 공양을 통해 거듭 강조하셨다.
선원 내부 공사로 자신과의 싸움이 처절하게 벌어진소리 없는 전쟁터에 잠시 총성이 멈췄다. 덕분에 성묵스님의 배려로 생생한 무문관 수행담을 직접 들을 수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화두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남국 스님(가명)은“무문관 수행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화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중요하다. 대자암 무문관에서 수행 중, 고요하고 청정한 상태가 지속되어 그것만 지키고 있었다. 망상이 일어나지 않으니 온통 환하고 밝아 청정 그대로가
되어 화두마저 사라져버렸다. 화두도 망상도 사라진 그것이 삼매인 줄 알았다. 대중 속에서는 서로 탁마가 되어 바로잡을 수도 있지만 혼자이기에 화두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수반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무문관 수행은 어떠한 경계에 부닥치더라도 스스로 풀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는 무문 스님(가명)은 어떤 경계를 접했을 때, 자기 경계에 자신이 속을 수 있어 스스로 안목을 점검할 수 있는 화두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이뭣고 화두를 참구하
면서 그 경계가 나타났을 때, 공부가 제대로 된 것인지, 수행과정인지, 가늠하기 위해 숨겨둔 암두 뱃사공 화두로 다시 한번 점검하며 경계에 대처한다.”
홀로 있기에 더욱 엄격해야 하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니 게울러질 수 있어 무문관 최대의 적은 해태심이다. 그러기에 매일 새벽과 저녁, 서원을 다짐하며 철저히 스스로를 채찍질해 나간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나갈 때는 힘이 붙고 탄력이 생겨 수월해지지
만, 자신에게 져 자괴감에 시달릴 때가 가장 힘이 든다. 그러므로 목표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용기를 내고 자신을 독려하여 정진력을 기른다. 좌선에만 집착하지 않고 하루 6~7회 마당으로 나가 행선으로 다리를 풀며 108배와 요가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이 금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온전히 행복하리라. 그리고 오직 정견에 사무쳐 살리라.”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온화한 모습을 잃지 않은 선객의 눈빛은 구도와 구세救世의 원력으로 끝없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하던 탐욕의 마음을 떨치고 중생을 향한 서원을 끊임없이 되새기며“이 생의 염불퇴를 반드시 이루어, 광
도중생廣度衆生하리라”라는 선객의 외침이 귓전을 두드려 가슴을 진동시킨다.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초월적 의지로 은산철벽을 넘어선 남국선원 무문관, 거기는 선방이 아니었다. 백척의 낭떠러지에서 까마득한 밑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절벽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