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섭존자가 어머니를 위해 천 개의 등을 밝혔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천등산千燈山은 호남 최초의 비구니 선원 금탑사를 품고 있다. 아소카왕이 8만4천 보탑을 조성해 바다에 띄웠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에 도달하여 절을 세우고 금탑사라 하였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금탑사는 대동지지에 문무왕의 태를 봉안했다는 기록과 당대 고승들의 시가 남아있다. 수백 명의 대중이 수행하였던 대가람이었으나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전란과 화재로 소실된 절터에 1991년, 현 선원장 서림 스님이 거주하면서 고난의 세월을 벗기고 오늘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선방에만 살다가 도반에 이끌려 발길을 들인 곳, 천장 뚫린 법당에서 하염없이 비를 맞는 부처님을 두고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멀리서 찾아온 도반들과 저수지로 포행을 나갔던 서림스님은 어둠속에서도 유난히 초롱초롱 빛나는 별빛에 마음이 진동했다.
평생 앉아서 공부만 해도 다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한 장좌불와 9년, 오롯이 화두 하나에 세상을 묻었다. 이불도 베개도 없이 그냥 신심이 절로 나오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좋았던지 잘 씻지도 않고 앉은 채로 살다시피 했다. 해인사 약수암, 보현암, 내원사 등에서 산문 밖을 잊은 채 선방에 앉아 스무 해를 더 넘겼다. 그날 밤, 저수지에 빠진 별빛 속에서 좌복 위에 내려놓은 마음만 챙겨와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에게로 달려갔다. “스님, 선방 지어 놓고 수좌 없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저 혼자라도 정진하렵니다.” 방장스님은 ‘금당’이라는 당호를 내려 주셨다. 열악하고 외진 곳에 찾아들 선객이 있을까? 하지만 선방 문은 열어야 겠다는 일념으로 아무 준비도 대책도 없이 불사는 시작되었다.
개울을 건너던 돌이 주춧돌이 되고, 산을 지키던 나무가 그대로 기둥이 되었다. 옹이를 살리고 속살을 드러낸 단백하고 순수한 자연의 정취가 심신을 안정시킨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선방, 고난의 세월이 응축된 옹이에서 용맹정진을 다짐하고, 껍질 벗은 기둥에서 무욕의 청정을 배운다. 2002년에 개원한 금당선원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20여명의 납자가 수행 할 수 있는 규모이다. 후원채 불사로 2년간 선방 운영을 쉬었으나, 올해 하안거부터 20명의 납자가 결제에 들어 하루 10시간씩 용맹정진 중이다. 위용 당당한 금당金堂 편액에서 “공부하려면 금탑사로 가라”고 하셨다는 구산 스님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아홉 자 방 여섯 칸짜리 큰 방에서 / 늙은이 둘이 삼동 결제를 했네 / 장판 한 장으로 족한 分을 일 많은 산중살이 마다는 덕분으로 / 마음대로 늘어놓고 살아 좋네 / (…) / 형님은 법당 소임, 나는 부엌 소임 / 크나큰 집에 늙은이 둘이 삼동 결제를\" (\'일 많은 산중살이 마다는 덕분에\' 중에서 )
절집의 삶을 시로 써내려가는 서림 스님의 시구가 너무 좋아 어느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훔친 자, 향기가 진동합니다” 라는 글귀를 넣어 액자를 만들어 가져온 시도 있다.
단정한 절집 뒤에는 스님들이 찻잎 따는 울력으로 분주하다. 일과 수행이 하나임을 보여주시는 서림스님은 큰스님 소리에 손사래를 치며 노스님이라고 불러 달라신다. 시자도 두지 않은 스님은 아직까지 저녁이면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자신의 빨래며 설거지는 물론 도량 구석구석 손길을 묻히지 않은 곳이 없다. “중 된 후, 돈 주고 옷 해 입은 적은 없었다.”는 스님은 평생 헌옷을 고쳐 입고, 떨어지면 천을 덧대어 기우고 누비다 보니 바느질 솜씨도 전문가를 능가한다. 인근에서는 금탑사가 문화재가 아니라 서림스님이 더 문화재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계행으로 서릿발 같은 수행을 이어왔다. 속세의 잣대를 던져버리고 물질적 곤궁으로 정신적 풍요를 누리며 마음 밭에서 소소한 행복을 건져 올리는 스님은 “도인이 되면 삼천 초목이 춤을 춘다는데 이제 그것이 이해가 되더라.”며 맑은 미소를 보이신다.
금탑사는 서림 스님의 일상에 감동해 달려온 인근 주민들이 일손을 보태고 등짐을 나눈, 승속의 땀방울이 혼합되어 피워낸 고귀한 마음꽃이다. 천등산에 가득 핀 마음꽃, 그 은은한 향기가 비자나무 숲 사이를 빠져나온 청량한 기운과 연한 온기를 만나 꽃바람을 일으킨다. 자연과 여한 없이 호흡하는 절집, 초록을 베고 누운 절집의 고요가 출렁인다. 풍경소리에 깨어난 유월의 햇살이 불그스레한 미소만 남기고 서산 아래로 몸을 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