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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포교의 도량 보광사 보광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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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연한 바람에 실린 여름향기를 쫓아 솔밭 공원을 지나서 북한산 순례길을 들어선다. 풍경소리, 염불소리를 먹고 자란 나무가 만들어 낸, 신선한 바람이 달려와 반가이 마중에 나섰다. 마음 비운다고 호들갑 떨지 않아도 깊게 들이 마신 바람 한 모금이, 가슴에 눌러 붙은 욕심 자락을 휘감고 사라진다. 꽃향기가 세상에 전하는 말, 숲이 바람을 부르는 소리, 나뭇잎이 걸어오는 이야기에 길섶을 달리던 다람쥐도 뜀박질을 멈추고 두 귀를 세운다. 북한산이 들려주는 소소한 여름 이야기가 마음을 흔들어 가슴에 묻어두었던 속내를 훌훌 털어낸다.

초록 옷을 겹겹이 껴입은 북한산 기슭, 절집을 휘감고 도는 산세의 침묵이 웅장하게 내려앉는다. 방금 쓸고 지나간 듯, 빗자루 흔적이 뚜렷이 남은 정갈한 마당에서 소박한 편안함이 솟아난다.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에 위치한 보광사普光寺는 1788년(정조12) 금강산에서 수행한 원담
스님이 창건한 신원사가 자리했던 곳이다. 그 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민가로 전락되었던, 절터에 남산당 정일 스님이 1979년 불사를 시작하여 법등을 다시 밝혔다. 서울 도심에 수행과 포교의 원력을 세웠던 정일스님은 1980년, 보광사로 사명을 바꾸고 관음전과 요사채 등을 증축하여 오늘의 면모를 갖추었다. 1990년, 서울 도심의 유일한 비구 수행처인 보광선원을 개설하여 선맥을 이어오고 있다.

보광사 입구로 순례길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한가로움 뒤에는 진리에 대한 몸부림으로 까만 밤을 오롯이 새우는 선객들이 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오직 화두 하나에 매달려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보광선원에는 12명의 스님이 안거에 들어 용맹정진 중이다.
바랑하나 둘러메고 구름 따라, 바람 따라 들어선 보광 산문, 선객들은 매일 오전 3시 죽비 예불을 시작으로 입선에 든다. 2-3시간씩 4차례 입선과 방선을 반복하며 하루 9시간 이상 참선 정진을 이어간다. 정진 시간 외에는 공양과 울력, 청소, 빨래 등으로 주변을 정리하며 틈틈이 포행과 산행을 겸하는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결전의 연속된 시간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열림과 닫힘이 공존하는 공간, 초라한 좌복 위에는 선기가 번뜩이고, 횃대 위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가사는 수행의 향을 뿜어내고 있다.
지극한 고요와 적막이 흐르는 선방 안에는 방선시간에도 숨소리조차 허락하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깨달음의 열매는 어떤 맛일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에 기대지 않는 공부의 끝은 어디일까? 문 없는 문을 열기 위해, 길 없는 길을 찾는 선객의 흔적을 낡은 좌복이 말해준다.

철저한 수행과 엄격한 지도로 선원을 이끌어 가시는 선원장 황노 스님은 출가자는 수행이 기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신다.
“수행자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철저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관대해야 한다. 끊임없는 수행으로 보리를 구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상구보리 화하중생이다. 경전을 외워서 전달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마음공부로 다져진 자신의 살림살이를 꺼내어 중생을 이끄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이다. 그러기 위해선 문전옥답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수행의 끈을 단단히 조이고, 번뇌를 녹이는 내면의 불씨를 키워 지혜의 불꽃을 피워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대이다. 무대에서 주인공은 총을 맞아도 죽지 않지만 엑스트라는 총소리만 들려도 죽어버린다. 주인공이 되느냐 엑스트라가 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동안 모은 재산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고 했듯이, 부처도 중생도 모두 내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시는 스님은 불자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여 주인공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 하신다.

“이제 갈 곳 없는 곳을 가야 한다.”
제자가 물었다.
“어디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창문을 열고 자세히 살펴 보거라.” 스님이 마지막 육성을 남기셨다.
“여덟 살 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슬픈 눈망울을 보고 생사의 의문을 품기 시작하셨다”는 스님은 그렇게 길을 떠나셨다.
나는 오늘 ‘순례’라는 길을 걸어 보광사로 왔다.
보광사에 선문을 열고 갈 곳 없는 곳으로 떠나신 정일 스님은 어느 길을 가고 계실까?